국내 복사기업계 어두운 "일본그늘"

복사기수출이 최근 2~3년간 비약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향후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는 국내 복사기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에서 비롯된다. 신도리코 코리아제록스 롯데캐논 등 주요 국내 복사기업체들은 주요 경쟁국 인 일본의 중저속 복사기 제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 상실로 80년대 전무하던 복사기수출이 90년대들어 매년 3백~4백%씩 급성장、 올해 6만여대 이상의수출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국내 복사기업계의 산업구조로는 앞으로 몇년 더 수출 성장세가 지속된다해도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일본업체들이 중국및 동남아 등지에 현지공장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저속기부문의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데다 국내 복사기업체들이 일본 업체들과 기술제휴및 합작관계에 있어 세계시장에서 독자적인 시장경쟁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복사기업체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은 물론 자본에서 까지일본업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신도리코 코리아제록스 롯데캐논 등 국내 복사기업계의 이른바 "빅3" 가운데 신도리코만이 75%의 자기지분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 코리아제록스와롯데캐논은 각각 일본의 후지제록스및 캐논과 50대50의 지분으로 합작하고 있다. 현재 일본 업체들이 국내 복사기업체의 경영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는하지만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현재 국내 복사기업체들은 분당 복사속도 30매 이하 수준의 중저속기에 대한 개발능력을 갖고 있을 뿐이며 중.고속기、 컬러복사기 、 디지털복사기 등 소위 첨단으로 넘어가는 제품은 일본에 개발에서부터 생산까지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국내 복사기업체들이 수출하는 물량의 대부분은 일본 업체들이 엔고 고임금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했거나 혹은 생산에 따른 실익이 없다고 판단、 한국 기업에 양보했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리코 제록스 캐논 등 복사기 각 그룹사간 물량조절도 전세계 복사기 시장의80% 이상을장악하고 있는 일본 업체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쟁은 처음부터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재 국내 복사기업체의 수출은 전세계 각 그룹사간 물량조정에 의해 이뤄지 는 것으로 TV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수출、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년간 복사기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은 일본이 거듭된 엔 고와 인건비 상승으로 중저속 복사기 분야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 이들 제품 생산을 한국으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복사기 수출도 일본업체들의 잇단 중국및 동남아 등 현지화 전략으로 장기적으로는 상당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국내 복사기업체들이 기술및 자본에서 일본업체에 사실상 종속관계를 맺고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의 영업확대에만 관심을 두고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국내 복사기업체들은 일본의 기술을 들여와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파는 대리점 수준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복사기업체들은 시장개방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 복사기 시장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우려할 것은 없다"며 "현재 국내업체들과 자본및기술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굳이 자체 유통망 조직 등 부담을 안고한국 시장에 진출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업체와 일본업체가 서로 "큰집 작은집" 관계인데 굳이 일본업체가 한국 에 진출할 이유도 없고 한국업체가 수출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복사기산업이 진행된다면 국내 복사기 업체들은 영원히 일본 과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복사기산업은 흔히 항공기산업에 비유된다. 그만큼 들어가는 부품도 많고 관련산업에 파급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국내 복사기산업이 정상적으로 발전、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립기반을 확보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복사기업체들의 자기 자본비율 확대및 기술개발노력과 아울러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함종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