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업계 새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V칩"

미 하원이 이달초 무선통신사업규제철폐법안과 함께 통과시킨 "V(Violence) 칩"이라는 낯선 이름의 법이 국내 가전업계에는 태풍의 눈으로 작용하고 있다. 3백5대 1백17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이 법의 뼈대는 폭력과 선정성 이 난무해 성인용으로 판정된 프로그램의 TV방영시 시청자가 비밀번호를 모르면 수신할 수 없도록 한 V칩을 13인치 이상 모든 TV수상기내에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를 유해 TV프로그램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 법안은 그러나 엉뚱하게도 TV제조업체、 특히 미국에 TV를 수출하는 외국업체에 그 불똥이 튀고 있다.

미국에 TV를 수출하고 있는 한국가전업체들은 물론 일본과 유럽 TV업체들은 최근 다각적인 정보 수집작업에 나서는 등 V칩 비상이 걸린 것으로 전해진 다. V칩은 현재까지 미국내에서도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다. 일부에서는 미국내에 V칩이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케이블TV수상기에 사용을 제한 하는 컨버터가 잘 못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V칩은 미국내에서 그 규격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개발업체도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국내 TV업체 관계자들은 밝혔다.

V칩기술은 현재 청각장애자를 위해 고안된 자막(Closed Captioning)기술과 유사하다. TV의 한 프레임은 5백25개 라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4백83개 라인 만이 영상이미지 재생에 사용되고 42개 라인은 비어 있다. 42개 라인 가운데18라인은 사용할 수 없는 완충라인이고 나머지 24라인은 자막 등의 부가서비스에 사용된다.

V칩 작동원리는 바로 이 빈 라인을 통해 방송사나 케이블TV프로그램공급업체 가 개별 프로그램에 부여된 등급을 보내면 TV수상기에 부착된 V칩이 성인물 에 한해서 TV화면 재생을 중단토록 하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보고싶은성인들의 경우 비밀번호를 누르면 되고 V칩은 화면을 다시 재생시켜준다.

V칩은 TV수상기에 별도 채용되기 보다는 마이컴내에 장착되는 형태로 개발되고 있는데 미국 전자업체들이 최근 그 신호기준을 만들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에서도 뚜렷한 V칩 규격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삼성.LG.대우 등 TV업체 관계자들은 V칩이 그리 어려운 기술은 아닐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년전 미국내에서 캡션 칩이 그랬던 것처럼 개발과 장착이 손쉬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주문형반도체 부문에서 월등한 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도 그 규격 확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V칩 개발이 그리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개발은 쉬울지라도 어차피 미국업체로부터 칩을 공급받아야 하는 입장인 국내 TV업체들로서는 이에 따른 원가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더욱이 미국업체들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마이컴 구득난에서 이미 확인됐듯이 늑장 공급을 일삼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현지 TV공장이 부품을 현지에서 구매하는 조달체계도 미흡하다.

이 때문에 국내 TV업체들은 V칩 장착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V칩 법이 일정대로 1년 뒤에 실시될 경우 자칫 초기단계에 TV수출에 구멍이 생길수도 있다.

국내 TV업체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말 의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만일 V칩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다른 유럽과 일본업체의 미국 내 거래선과 공동으로 유예기간을 연장시키는 쪽으로 로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특히 TV방송사 등 미국 미디어업체들이 최근 "V칩"법에 반발하고 나서고 있는 점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에 통과된 "V칩" 법은 그 자체 보다는 최근 미국이 기존의 반덤핑 규제를 넘어서 점차 다양한 방법으로 대외 무역장벽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한 단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이 업계 한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V칩"법의 경우 청소년을 유해프로그램으로 보호한다는 문화 및 미디어 정책 이라는 성격이 뚜렷하지만 외국 TV업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교묘한 무역 장벽 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정부는 최근 1~2년사이 환경보전과 에너지절약을 빌미로 플라스틱으로 된 TV케이스나 패킹 등을 규제하고 정격전압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최근에는 TV수상기에 케이블TV수신기능의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이 나올 때마다 국내 TV업체들은 비상이 걸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국내 TV업체들의 정보수집체계는 대부분 취약한 상태로 뒤늦게 부산을 떨게 마련이고 새로운 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일본 등 선진국 업체 와 비교하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TV업계는 당장 문제가 된 V칩 등에 대책마련보다는 이같은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