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중소 PCB업체들의 설움

요즘 중소 산업용PCB(인쇄회로기판)업계에 "연말 위기론"이 팽배해 있다. 에폭시원판 품귀사태가 지금 상태로 계속된다면 연말께는 상당수 업체가 문을닫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말이다.

실제로 현재 중소 PCB업체들이 겪고 있는 원판 구득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음거래는 옛날 얘기고、 돈뭉치를 들고 줄을 서도 원판을 구할 수가 없다" 는 것이 관계자들의 표현이다. 실제로 원판을 구하지 못해 호황임에도 한달 이면 1주일은 공장을 놀리는 게 예사다.

물론 원판수급이 어렵기는 중견업체들도 마찬가지지만 체감도는 중소업체들 과 비교가 안된다. 대다수의 중견업체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대대적인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원판수급도 문제지만 정작 중소 업체들을 서럽게 하는 것은 이들이 여기저기 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 품귀가 일면서 대기업인 원판업체들은 아예 중견업체로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 중소업체의 "젖줄"인 원판대리점에 대한 공급량도 이미 오래 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업계를 대변해야 할 유일한 창구인 한국PCB연구조합도 이들 중소 산업용 PCB 업체들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비유된다. 연구조합이 몇몇 중견 업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 중소업체를 위해 해줄 것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같은 어려움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데서 중소 PCB업 체들의 설움은 더욱 커진다. 원판업체에 사정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고 싶지만 자칫 "불만세력"으로 낙인찍히는 날이면 그마저도 원판공급이 완전히 끊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제체제에서 경쟁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기업 존립의 근본목적은 영리추구라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원판 업체들의 횡포 아닌 횡포는 어려울 때 함께 고생했던 조강지처를 저버리는처사라는 비난은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현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한달이면 천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다. 중소 PCB업체들에 대한 정부와 대기 업들의 외면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연말께는 살아남을 수 있는 PCB업체가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