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송용 카메라와 VCR의 대부분은 수입선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돼 일본제품의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송 용 카메라와 VCR는 대부분 일본 소니와 마쓰시타전기 제품이다.
KBS.MBC.SBS등 공중파방송국과 케이블TV채널인 YTN의 경우 수입선다변화 예외인정을 받아 소니의 방송용 카메라와 VCR를 자유롭게 수입、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 5월 출범한 4개 지역민방들 역시 50%에 가까운 물량을 소니의 베 타캄 장비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YTN을 제외한 나머지 케이블TV채널과 독립프로덕션들은 수입선다변화 정책에 묶여 일본으로부터 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대우전자와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들 제품 역시 일본 소니와 마쓰시타전기의 제품을 그대로 들여와 상표만을 바꾼 제품에 불과해 실질적으로는 일제 방송장비가 국내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수입선다변화 정책으로 일제장비의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일부 방송사 와 프로덕션들은 국내에서 대량 유통되고 있는 밀수품들을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처럼 수입선다변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제 방송장비가 국내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소니와 마쓰시타전기가 세계 방송장비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국내 방송관계자들이 이들 제품을 절대적으로 선호하고 있는데다 국내에서 개발.생산되는 방송용 카메라와 VCR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지난 93년말 대우전자를 시작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은 방송장비의 국산화를 기치로 내걸고 일본 및 미국업체들과 제휴、 방송장비 산업에 진출했으나 아직까지 제품의 국산화율이 극히 낮아 국산 방송장비라 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제품은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방송장비 국산화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입선다변화 정책에 안주、 장비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방송장비산업의 부진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국내 대기업들에게 만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방송장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인 계획 이 필요하고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연구인력의 투입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이는 결코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방송장비 개발과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이 마련되고 이에 따른 지원이 뒤따라야만 소니.마쓰시타전기 등과 같은 세계적인 장비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통상산업부는 방송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일제장비의 직접적 인 수입을 막는 수입선다변화만을 고수하고 있을 뿐 관련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방송장비 수입선다변화정책은 일제장비에 길들여진 사용자들로부터 대안 없는 극약처방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지속시켜주는대의명분은 오직 "방송장비의 국산화"라는 구호뿐이고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후속조치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방송장비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은 방송장비에 대한 수입선다변화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방송장비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정부의 한층 더 적극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관련정책 부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방송장비산업이 당면하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점은 국내 방송기술인들이 일제 방송장비、 특히 소니 방송장비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편향적인 의식이다.
물론 소니제품은 세계방송장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국산 방송장비가 전무한 상황에서 방송기술인들이 이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으나 국내에서 생산된 장비들을 철저히 외면한채 "소니 베타캄 장비가 아니면안된다 는 식의 자세는 국내 업체들의 장비개발 의욕을 저하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방송장비 개발에 있어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할 방송기술인들의 그같은 자세는 국내 관련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책임회피적인 자세라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국내 방송장비 산업은 정책의 부재、 방송장비 생산업체들의 장비 국산 화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 방송현업인들의 국산장비 기피 등이 방송장비의 국산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김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