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시스템"의 국산화 구상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초고속시스템 국산 공급기반 조성 지원계획"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취약한 초고속 정보통신시스템 관련산업을 오는 201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야심찬 정책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메마른 우리나라 정보통신기기산업을 적셔주는 "단비"로 비유할 만하다.

특히 외산제품의 적극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보통신기기 업계로서 는이번 계획발표로 정부의 정보통신시스템 국산화 의지가 재확인된 것을 큰 수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앞으로 실천과정에서 기대되는 각종 지원조치 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초고속시스템 국산 공급기반 조성 지원계획"의 골자 를간추려 보면 오는 2010년까지 총 2조1천여억원을 들여 해마다 30개 이상의정보통신시스템과 관련부품 국산화를 적극 추진、 현재 19%에 그치고 있는국산제품 공급률을 65%선까지 끌어올리고 국산시스템 구매자금을 지원、 민간기업이 개발한 국산 정보통신시스템의 보급을 촉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보통신부는 이번 계획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그동안 국책연구소 중심 으로 이루어지던 연구개발 프로젝트 수행주체를 민간기업 위주로 전환하고 정보통신시스템 개발을 개발전단계-개발단계-상품화단계-채택사용단계로 나 눠단계별로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는 정보통신부가 할 수있는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한 인상이다.

이번 정보통신부의 초고속 시스템 국산 공급기반 조성 구상은 옳은 방향이 고추진은 빠를수록 좋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도 아울러 강구해야 할 것이다.

첫째、 자금조달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돼야 한다. 그동안 외산제품 수입에 의존했던 교환시스템、 전송시스템、 접속장치、 단말기、 데이터처리시스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 등을 "우리 손"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 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96년부터 97년까지 2년동안 1천8백억원을 투자하는것을 비롯해 2010년까지 모두 2조1천5백억원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그러 나자금조달 방법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우선 정보통신부는 정부 투자분 2천7백32억원을 초고속사업비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아직까지 재경원 등 관계부처와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1조 8천7백6억원에 이르는 민간투자분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초분야나 미래성장분야보다는 당장 이익이 나는 분야를선호해서 돈을 쏟아 붓는 민간기업의 투자성향에 비춰볼 때 1조8천억원에 이르는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통부는 관계부처와의 협의 못지않게 민간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만한 특별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정보통신산업의 국가전략산업으로의 육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발굴된 수많은 사업과제가 의욕에 앞서 현실에 맞지 않게 선정되지 않았느냐하는 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민간기업의 기술수준이나 연구개발 력、 투자규모 등을 감안、 실현가능한 과제부터 우선 발굴하지 않고 무조건 첨단.고기능 정보통신시스템 개발만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다. 정통부 가 이번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사업별 전담기관과 민간업계의 의견을 과제 선정에 최대한 반영키로 한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선정 방법을 구체 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민간기업의 정보시스템 관련제품 개발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국산시스템 구매자에 대해 정부의 자금을 지원해주기로 한 것도 부작용을 일으킬수있는 소지가 있다. WTO출범 이후 정부차원에서 자국제품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해주거나 국산제품의 우선구매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외국과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정부차원의 국산제품 구매지원에 대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보통신부의 2010년 초고속시스템 국산화 구상이 우리나라 정보통신시스 템산업의 경쟁력 제고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집중적인 지원과 민간기업의 전폭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생색만 내려 한다거나 업계가 지원금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2010년의 세계수준의 정보통신시스 템국산화 실현이 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가 "30년대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나는 인류의 미래를 보고 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95년의 베트남"을 둘러본 한국기업인들은 대부분 "우리의 60년대 초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