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특집] 전자산업과 남북 통일

"통일후 전자산업 배치 어떻게 할까". 전자신문은 광복50주년을 맞아 통일시대의 남북한 협력시대에 대비, 남북한간의 전자산업 협력가능성을 새롭게조명해 보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전자산업 설비와 기술이 남한의 70년대 수준에 지나지않아 통일후 당장 북한의 생산설비를 활용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남한에서 경쟁력 약화가 예상되는 부품산업, 가전산업 등에 대한 기술및 설비 이전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진단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통일후에는 단순한 조립산업뿐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전자산업 전반에 대한 지역적 안배를 고려한 전자산업 전면재배치가 있어야할 것으로 지적돼 관심을 모았다.<편집자 주> 해방이후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의 전자산업은 "경공업 위주의 수출드라이 브정책"을, 사회주의 국가였던 북한은 "중공업 중심의 대내지향적 공업화전 략"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 남한은 94년 현재 세계 6위의 전자산업 생산국으로 성장했고 북한 은생산자료조차 조사되지 않는 철저한 폐쇄주의적인 국가로 변모해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비교근거를 외형적인 생산량이나 수출량을 가지고 따지는 일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체제가 다른 사회를 평가하는데 있어 체제의 특수성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수치만으로 평가했다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접한 최근 몇년간 위의 평가방법도 나름대 로타당성을 지닐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남한의 전자산업은 남한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북한의 전자산업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자역경생"이라는 기본원칙하에서 자급자족을 위한 산업의 하나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역경생"의 원칙은 대내지향적인 중공업 우선주의 전략"으로 파악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원칙주의는 남한에서 같은 의미의 "경제자입"이란 대원칙 아래 "대외지향적인 경공업위주의 수출드라이브정책"을 구사한 것과는 큰 차 별성을 가진다.

북한의 중공업우선정책은 공업위주의 경제구조개편을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경공업 발전을 외면 군사력증강정책과맞물려 중공업만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내지향적인 북한의 전자산업정책은 대외경협을 통한 기술도입의 기회를 상실, 결국 자체기술개발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북한전자산업의 90년대 모습은 대단위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하던 남한의 70년 대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북한 전자산업 발달은 대안전기공장, 평양전기공장, 청진 주을전기공장에서자석식 교환기, 전화기, 확성기 등을 생산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북한은 소련과 체코의 기술지원으로 전선, 애자, 중.소형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소용량 수력발전기, 공장용 화력발전기, 디젤엔진 발전기 등을 생산하면서 중전기 위주의 전자산업을 발달시켰다.

6.25가 끝난 뒤 북한은 체신기자재, 건전지 등 전기자재 공장에 집중투자, 전자산업의 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의 지원으로 붕괴된 발전소 복구에 나섰다.

58년 남포통신기계공장이 설립된 이후 북한은 평양, 박천, 선천, 강계 통신기계공장 등 10여개의 통신기기 공장을 준공, 통신기기를 중심으로 하는초보적인 제품을 생산해 냈다. 60년대에 이르러 가전제품 생산을 추진, 각 지방 분공장에서는 소량의 TV 및 냉장고, 선풍기, 다리미 등을 생산했다.

70년대 들어서 북한은 전자산업의 발전에 있어 한계에 직면했다. 폐쇄적인 국가정책으로 외국 기술도입이 어렵고, 전자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기반구축 이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자강도 희천 에 희천 전자관공장을 설립, 전자.자동화에 필요한 핵심부품인 전자관 생산 을 시작했다.

72년에는 평양전기공장에 신호기구 공장을 신설, 공장자동화에 필요한 계전기 및 개폐기 등을 생산했다. 또한 각지방에는 자동화계기기구 분공장 60 개소와 소재공장 8개소를 설립,전자산업 발전에 기초를 다졌다. 대안전기공 장은 70년대에 대안 중기계연합기업소로 확대개편되면서 전기기기의 생산 대규모화 계열화를 추진, 71년부터 7만㎻와 20만㎻의 변압기, 5만㎻ 수력발전 기, 2극 1만㎻ 고압전동기, 2천5백마력 디젤 기관차 "금성호"용 직류발전기 등을 생산했다.

또한 북한은 냉장고 12만6천대, 세탁기 11만대를 생산목표로 설정, 71년 일본으로부터 각각 5만대 규모의 생산설비를 도입했다. TV는 연간 10만대 생산목표를 설정하고 대동강 TV수상기 공장건설을 추진했으나 내부문제로 인해79년에 완공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개방.개혁을 단행하자 북한은 84년 합영법을 제정,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함경북도의 웅기(새별), 나진.선 봉, 청진지역 개발에 남한을 비롯한 동북아시아국가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80년대 북한은 설비 및 시설투자를 확대해 대형중전기기 생산을 추진했다.

이에따라 북한은 중전기 제품중 소형전동기, 변압기 등을 자체조달, 일부를소련 및 동구국가들에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대형 전기터빈 대형발전기 등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이시기에는 UNDP 지원으로 집적회로 시험공장과 조선컴퓨터센터, 평양프로그램센터 모란봉 자동기구공장, 6월 1일 전자기기종합공장 등 컴퓨터 관련 공장이 설립됐다. 이곳을 중심으로 IC제조기술, 컴퓨터 제작 및 응용기술 광케이블 및 광통신 등의 기술도입을 추진, 제품생산에 나섰다. 84년 합 영법의 실시로 북한에는 1백여개의 합영기업이 생겨났으며 그중 26개의 전자 관련 합영기업도 설립되었다. 특히 이기간에 일본거주 조총련 회사들과 사업 을 개시해 컬러TV, 전자계산기, 기타 가전제품 등을 조립생산하게 됐다.

북한은 과학발전 3개년 계획(1차:88.7~91.6, 2차:91.7~94.6)을 수립, 전자 공업과 자동화공업분야의 발전을 적극 추진했다. 32비트급 컴퓨터의 공업화 실현, 64비트급 컴퓨터 개발,자동화요소 생산 등이 주요 목표였다.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붕괴로 인해 충격을 받은 북한은 최근 중공업일변도의 정책을 경공업 제일주의로 체제를 변화시킨다.

90년 10월 조총련의 지원으로 건설된 컴퓨터 종합운영기관인 조선컴퓨터센터 는 전산망 구성 등의 일을 담당하고 컴퓨터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나전문기술 및 전문인력 부족, 생산시설 미비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실정이다. 김정일은 91년 4월 "전자자동화"라는 책에서 "집적회로를 비롯한 전자요소 와전자계산기의 개발"과 "자동조종리론을 발전시키고 자동화 요소와 장치, 자동조종체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 컴퓨터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이테크산업이 국가경 제를 좌우할 것"으로 파악하고 법, 제도 정비를 통해 이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적극 유치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특히 외국 기업의 기술력과 자국의 노동력을 결합, 경쟁력을 가진 가전제품을 생산해 동남아 등지에 수출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나진 선봉지구를 중심으로 선진자본과 기술도입을 추진중이 다. 또한 북한은 최근 대규모의 집직회로 연구와 고속반도체 개발을 주요내용 으로 하는 "2000년 과학기술발전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궤적을 걸어온 남북한 전자산업이 통일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해가며 세계 제1의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상이한 성격을 지닌 남한과 북한의 전자산업을 효율적으로 조화시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낭비요소를 제거할 수 있도록 생산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자산업의 재배치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우를 예를 들어 급진적인 통일보다는 각 분야의 활발 한교류를 통해 산업발전과 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 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통일에 따른 충격완화와 한쪽 사회의 급격한 붕괴로 인한 경제력 부담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 통일은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인통합보다는 전자산업을 비롯한 경제분야의 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상호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경제교류, 통화단위 의 통일, 사유화제도 인정, 정치적 통합 등이 서서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 한다. 먼저 북한의 전자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생산체계, 기술수준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동독의 경우처럼 붕괴이후 서독으로의 대이동, 동독경제의 완전 몰락이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비용부담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의 초기 투자는 대규모보다 소규모 투자 가바람직하며 그 기간은 10여년 정도"로 전망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위험부 담을 최소한으로 감소시키고, 북한내에 남한의 생산체제에 대한 적응기간을 두자는 사전포석인 동시에 북한의 기술수준 향상과 인프라 구축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위해 현재부터 통일을 위한 초기 전자산업의 대비책으로 노동집약적인 가전산업과 부품산업을 위주로 한 합작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 전자산업은 설비와 기술수준이 남한의 70년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따라전문가들은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의 전자산업의 생산설비를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단언한다. 따라서 통일이후 전자산업을 배치하는 데 있어서 현재 북한내에 있는 모든 생산설비는 거의 모두를 교체해야한다는 전제 아래 남한에서 경쟁력약화가 예상되는 부품산업, 가전산업 등에 대한 기술 및 설비의 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가전부문의 경우 우리가 만든 TV 완제품과 부품이 북한으 로반출되는 단계를 거쳐 북한내에서 공장을 설립, 부품생산 및 조립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순차적인 발전방향이 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두번째 단계로는 정치적으로는 국가연합형태, 경제적으로는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시기에 전자산업은 북한지역의 기업을 자본주의 시장에 급속하게 노출시키기보다는 다자간 프로젝트를 통한 사업투자, 각종 경영, 기술지도를 통한 연합네트워크 건설을 이뤄야 한다. 특히 현지 생산은 중전기, 가전분야 등에대한 북한기업과 남한기업의 공동연구와 공동제품 생산 등이 컨소시엄 형태 로 진행, 북한의 전자산업기반을 강화시킨다.

남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단일국가를 이룬시점에서는 반도체, 산업전자등 첨단전자산업에 대한 지역적 안배를 고려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북한에 입지할 전자산업을 단순한 조립산업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기전자 산업 등의 입지 유망지역으로 평양, 신의주를 꼽고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이들지역에 TV 등 가전제품 생산기반이 확충되어 있고 대량의 노동력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북한의 PC생산수준은 수입된 부품을 가지고 16비트와 32비트급을 조립생산 하는 수준.

93년 북한의 조선컴퓨터센터를 방문하고 온 외국학자는 "SUN SPARC 워크스테이션 등 많은 선진국 기자재가 도입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는 16비트 컴퓨터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컴퓨터 개발 역사는 60년대 김책공대와 김일성대학에서 전자계산기 의자체개발을 시도한 것에서 출발하나 인적자원과 반도체산업의 수준미달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첫 생산제품른 80년대초 일본제 부품으로 만든8비트급 "봉화4 1"이다.

북한은 84년 합영법 실시이후 컴퓨터 생산기술및 SW개발, 컴퓨터 운용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해 왔다.

북한은 특히 소련, 중국, 동구권 국가에 유학생을 파견, 첨단과학기술 습득을 위해 노력했으나 소련의 붕괴로 인해 유학생의 월남이 높아지자 소환조치했다. 87년 과학원 산하 전자공학원연구소에 IC 시험공장을, 89년 평양에 IC공장, 해주와 단천에는 반도체 공장을 완공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북한은 90년에 조선컴퓨터센터를, 91년에는 컴퓨터 요원양성센터가 설립했다. 또한 조총련과 UNDP지원으로 평양프로그램센터를확대개편하기에 이르렀다.

SW분야는 90년 단순기능을 가진 워드프로세서의 일종인 "창덕"이 개발됐고 프로그램 경연대회를 통한 재정부기, 교무행정, 의료진단 등의 각종 프로 그램이 개발됐다. 그러나 산업용SW는 주로 일본, 중국, 홍콩을 통해 도입하 여사용하고 있는 수준이다.

<통신> 북한의 통신산업은 주로 행정중심의 발달을 해왔다. 80년대 들어 대외무역 의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국내.국제 통신시설 확장 및 현대화를 추진했으나 민간통신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실정.

중앙에서부터 도.시.군.리에 이르는 전화 자동화계획을 1단계 1백만회선, 2단계 3백만회선로 나누어 추진중이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의 국제통신망은 평양과 북경,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무선망과 신의주 와북경, 청진과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유선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는평양과 싱가포르, 홍콩, 미국, 일본을 연결하는 무선망과 중국을 통한 간접통신망이 구성됐다.

북한은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를 계기로 통신시설 확장 및 현대 화를 추진중이다. 특히 나진 선봉지대에는 중국 길림성과 나진.청진시를 연결하는 광케이블 공사가 진행중이다.

현재 북한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화자동교환기는 전자식교환기, Crossbar교 환기, Step by Step교환기 등인데 장래의 ISDN을 고려, 디지털통신방식으로의구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선방송> 북한의 유선방송부문은 주민선전.선동.정보통제 및 동원 등 정치적 목적아 래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설치비용이 과다하지 않고 지역단위의 정보제공이 용이하기 때문에 최근 건설된 아파트단지내에는 필수적인 부대시설 이되고 있다.

<전자부품 및 반도체> 북한의 전자부품생산은 흑백TV수상기, 냉장고 등 일부 가전제품의 발달 미흡으로 인해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컬러TV 등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은 러시아나 루마니아, 일본 등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반도체 자체개발을 위해 87년 인도로부터 IC생산시설 도입, 생산을 추진중이다. 현재 디지털 IC 중 가장 기본품목만 생산중이나 고급연구인력부족 IC제조관련 기초기술부족, 생산시설 미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북한은 김책공대내의 반도체연구소와, 평양집적회로공장, 해주반도체 공장, 단천반도체 공장 등을 운용중이다.

<축전지> 북한은 구소련과 대동강 축전지 공장을 평양에 건설, 생산된 자동차용 축전지와 에나멜선의 80%, 소형 전기모터의 60%를 러시아에 공급하고 있다.

이공장은78년에 완공, 연간 자동차용 축전지 1백2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추고있다. <김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