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는 응급 VR 병동에 의사를 따라 들어간다. 흰 색의 작은 텐트가 죽 늘어서 있고 간호원들이 위로 젖히는 문을 통해 분주히 왔다갔다 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안에 있는 것 같다. 응급 병동이라기보다 오히려 종교 휴양지 같다. 명상을 위한 배경 음악까지 들린다.
고비는 윈스턴 박사를 슬쩍 훔쳐본다.
"저거 들리시죠?" 처음으로 긴장이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비에게 묻는다.
"무슨 그레고리오 성가(성가) 같은데요?" "저희 생각으로는 힐데가드의 기도곡을 합성한 그런 것 같습니다. 힐데가 드의 음악을 좀 아시나요? 고비는 무표정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본다. 물론 힐데가드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생각이 뒤범벅되어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아직도 쇼크 상태에 있는 것이다.
"독일의 12세기 신비음악 작곡가 아닌가요? 그건 그렇고, 이 음악이 지금 무슨 상관이라는 겁니까? 병원에서 무슨 음악을 트는지도 모르십니까?" 바로 그 때, 홀릴 듯 감미로운 곡조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둘 다 완전히 그 소리에 빠져든다.
"바로 그겁니다. 병원 측에선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거든요. 여긴 오디오 시스템조차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일 아니겠습니까? 자, 이쪽으로 가시죠." 둘은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 앞에서 멈춰 선다.
"아, 교수님, 여기 계셨군요!" 윈스턴 박사가 소리친다.
교수라는 사람은 대머리에다 흰 머리가 성글게 남은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두툼한 안경에 구겨진 벨벳 양복을 입고는 천정에 무슨 폭탄이나 되듯조심스럽게 녹음기를 갖다 대고 있다.
"죄송합니다. 녹음 중이셨나보죠?" "괜찮습니다. 이미 사방에 녹음기를 설치해 놨으니까요.""샌프란시스코 음악학교의 뮐러 교수십니다. 고비씨는 여기 있는 환자의 아버님 되십니다." 뮐러는 고개를 끄덕인다.
"틀림없는 힐데가드입니다." 강한 독일식 억양으로 말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드님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셔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어쨌든 이 음악만은 정말 기적 같죠?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뭐가 확실하다고요?" 아직도 정신이 딴데 가 있는 고비가 묻는다.
"뮐러 교수님은 중세 음악의 권위자이십니다. 몇 시간 전 이 음악이 처음 흘러나올 때부터 교수님께서 녹음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