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난의 시대 (47)

"뉴도쿄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니 다른 어떤 곳도요." "다시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내일 LA공항에서 출발하시도록 12시, 사토리 항공의 일등석으로 예약해 놓았습니다. 나리타 공항에서부터는 박사님 전속 으로 시중들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입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뉴도쿄에는 갈 일 없습니다. 댁의 회장이 어떻게 됐건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오. 내 아들이 혼수 상태요. 어쩌면……, 어쩌면 내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난 여기 있을 것이오. 더 이상할 말이 없군요." "그게 바로 지금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아드님의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고비는 무선으로 움직이는 홀로그램에게 다가가 우뚝 선 채 말한다.

"뭐라고요? 내 아들의 목숨이 달렸다고요? 내 아들의 목숨이 어디에 달렸다고요?! "하라다 회장님을 찾으십시오. 사토리시를 리부트(reboot)할 차세대 가상 도시의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드님뿐 아니라 실낱 같은 의식으로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돕지 않으신다면……. 그 이상은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지요? 이제 결정은 박사님께 달려 있습니다.""함정이 뭐요?" "함정은 없습니다. 자, 결정하셨습니까?" 고비는 한 번도 홀로그램을 쳐본 적이 없었다. 와다가 비틀거린다. 그 놀 란표정 하나만으로도 뉴도쿄에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6천 km 정도 빗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한 방 먹이는 기분은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고비는 쓴웃음을 짓는다. 결국 멜리사가 옳았던 것이다. 그녀의 "두꺼운 얼굴에 검은 마음" 육감이 성인 가상병동의 복도를 휩쓸고 지나가는 귀신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런데 중세의 그 신비로운 힐데가드 음률은 어떻게 된 거지? "아, 놀라운 신의 창조물들, 하늘을 우러르며……." 그는 인상을 찌푸린다. 대체 이건 무슨 소릴까? 이걸 꺼버리지 왜 그냥 놔 두는 거야?! 인간의 찌꺼기로 밖에 묘사할 수 없는 것을 덮으며 씩씩거리는돼지들의 후렴이 들린다. 그는 자세히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것들은 진짜 돼지가 아닌가! 그가 상상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