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명실공히 짬뽕시대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공상 과학영화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국악과 서양 음악을 접목한 곡이 대중의 갈채를 받는다. 영화 "서편제"는 판소리의 완성 과정을보여주는 줄거리에 서양 악기와 우리 악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김수철씨 의음악이 전편에 흐르고 있어 진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또한 지난해부터 상당한 부수가 팔리고 있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는 여행과 한국의 고대 예술픔 감상이라는 낭만적인 요소를 절묘하게조화시킨 결과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가 하나로 어우러져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 왔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음악 과문학이 어우러진 오페라, 영화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뮤지컬, 미술에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행위예술을 비롯하여 만화와 영화가 결합된 만화영화 등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학문분야에서도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분야의 학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대 물리학의 최신 이론을 연구하려면 통계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경제학을 다루는 학자들도 수학을 사용하지 않으면 계량경제학 분야는 연구하기 어려운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분야를 계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접목 현상이 이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을까. 여 러원인이 있겠지만 첫째, 한 분야에서의 발전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끼는사람들이 새로운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예술가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학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다루는 미해결 문제를 타분야의 도움으로 해결해 보려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로 짬뽕 문화의 성행, 계 면과학의 활성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만남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중심의 서양문명은 본래 이동성이 강한 특성이 있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아프리카를 탐험, 정복하고 미국을 "발견"한 뒤 지구상에서는 더이상 갈곳이 없어지자 69년 마침내 달에까지 인간을 착륙시킴으로써 길고 긴 여정을 일단 마쳤다. 그러자 자연히 이동성에 제동이 걸리게 되고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살아야 하는 정착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양문화는 본래 이동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착시대에는 맞지 않아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예전부터 정착성 이강한 문화를 가꾸어왔던 동양문화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동양인들은 산업화에 따라 서양인을 상대로 원료를 구입하고 제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외향성.이동성을 띠게되고 필연적으로 서양문화와 폭넓은 접촉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서양은 동양을, 동양은 서양을 서로 닮게되고 그결과 짬뽕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짬뽕문화는 정보유통의 활성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동.
서양의만남으로 서로의 문화가 상대방에 적극적으로 소개되면서 신문, 방송 컴퓨터 통신망을 비롯하여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 방송에 이르기까지 실 로다양한 형태의 매체를 통하여 쉴새없이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 그 결과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단시간에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 유통의 활성화는 사람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하고 급기야는 짬뽕 문화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열린 음악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가곡과 우리 가요가 한 자리에서 불려지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예전에는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한자리에 서기 를꺼렸던 성악가들과 대중가요 가수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그야말로 열린 마음을 갖고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다. 짬뽕 문화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려면 이렇게 타인을 수용하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정보공원에선 모든 이가 즐겁게 산책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