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활은 선정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출생과 사망은 자기 자신이 선정하는 것이 아니고 신의 영역인 운명이지만, 그 중간과정은 자신이 무엇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학교와 전공의 선정, 직장의 선정 배우자의 선정, 친구의 선정 등등이 한 사람의 일생을 그대로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선정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평가한 결과를 되씹으며 행복하다고도 또는 불행하다고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생활뿐만 아니라 어떤 과업을 수행하는 것도 선정과 평가가 반복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평가를 통해 성공여부가 판명된다.
선정과 평가에는 그 작업을 인도하는 선정기준과 평가기준이 있고, 그 배경에는 공통된 가치관이 존재한다. 선정시의 가치기준과 평가시의 가치기준 이같을 수도 있고 여건의 변화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데 선정과 평가에는 시차가 있게 마련이라 선정과 평가시의 기준차이로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대개사람의 일상생활에서는 선정에 비중을 두는 것이 상례이고 일에 있어서는평가에 비중을 두는 것 같다.
배우자를 선정할 당시의 견해와 가치기준이 살아가노라면 변화되게 마련이라나중에 다시 평가하면 결과가 다를 수 있지만 정에 얽혀 재평가라는 것을체념하거나 후한 점수를 주면서 살아가면 이혼율이 낮고, 재평가에만 집착하 면이혼율이 높아진다. 삶에 있어 선정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예다. 그런데 선정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평가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으니 큰일이다. 나라살림이 한 예라고 본다. 특히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의 마음가짐이 그렇다. 비자금이 윤활유 노릇을 한 오늘의 한국정치상황을 초래한 것은우리들이 선정을 잘못한 것인데, 자기를 탓하기보다는 남의 잘못만을 보고 엄정히 다스리기만을 주창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바른 선정 보다는 엄한 평가를 중히 여기는 사회일수록 후진이다. 바른 선정과 엄한 평가를 동시에 추구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좋으나, 평가라는 것이 원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바른 선정만 잘 해도 선진사회라고 볼 수 있다.
엄한 평가만을 고집하는 것이 후진사회의 특징인 것은 평가작업을 했다는구실로 잘못된 선정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평가과정이나 그 결과를 가지고 위세를 보이는 기회로 만들려고만 하지, 평가의 결과를 다음의 선정작업에 반영시켜 시스템 전체를 향상시키려는 평가의 순수한 목적을 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사업의 기획-선정-수행관리-평가-재기획작업에 많이 참여하게 되는데, 한국만큼 평가작업의 단계별 절차가 완벽하게 정립되어 있는나라도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획-선정에는 예산이 아예 마련되지 않거나 미비해서 관련 전문가의 지식에 무임승차해 제시한 의견의 집대성을 기획이라 하고, 선정은 나누어주며 인심이나 쓰는 절차로 생각한다. 태만한 선정의 결과로 평가할 대상이 이미 부실하다면 그 과업을 수행한 결과를 잘 평가한들 얼마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참다운 평가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가가 재기획을 거쳐 다음의 선정작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TDMA의 초기접속에서 기준 국과 종국간에 "Feedback Loop"가 끊어지면 제어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선정과 평가만을 고려한다면 평가보다는 선정이 우선함을 더욱 강조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