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파문이 장기화하면서 전자부품을 비롯한 중소 제조업체들의 자금난 이극심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됐던 재벌 총수들이 대부 분불구속 기소되고 자체 정화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기업들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중소 제조업체들의 자금경색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있다. 이는 중소업체들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사채업자들이 지레 움츠러들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채시장의 이같은 행태가 오랜 세월 관례화해온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은 은행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대출여부를 검토할 때는 고자세로 일관해 중소업자들을 고금리의 사채시장 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으로서는 확실한 담보의 확보가 중요하겠지만、 독자적인 기술로 성공가능성이 많은 중소 벤처기업의 경우에도 기술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받지 못해 결국 사채시장을 찾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솔전자의 한 관계자는 "과거 한국마벨 시절에는 은행으로부터 1억~2억원 의사업자금도 대출받기가 어려웠으나 한솔측에 인수된 이후에는 테헤란로 일대은행들의 최대 고객으로 부상해 앉은 자리에서도 대출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담보능력은 과거와 다르지않음에도 한솔이라는 거대기업의 후광이 은행들의 태도를 바꾼 것 같다"는 말에서 중소기업이 은행을 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정부의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오랜 가뭄끝에 콩 나는 식"의 현행 지원체계로는 실효성 을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차세대 조명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모업체 사장도 "지난 5년 동안 약 10 억원이 연구개발비로 소요됐으나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1억여원에 그쳤으며 그나마 지원을 받기까지 복잡한 행정절차로 인해 도중에 지원받는 것을포기할 지경에까지 이른 적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약자에게는 원칙에 충실하고 강자에게는 융통성을 베푸는、 지금과같은 관행과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사회.정치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힘없는 중소기업들만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또 이같은 분위기에서 정부나 금 융권이 중소기업 육성을 아무리 목소리 높여 외쳐도 중소기업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 조정이 시급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