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에 대한 의미를 규정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대립적인 관계 안에서 한쌍으로 취급돼야 한다고생각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서로 대비됨으로써비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라고 할 때는아날로그 테크놀로지와 대비해야만 그 내용이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커뮤니케이션)를 할 때는 언어이외에 표정이나 몸짓 등의 비언어적인 수단이 의사소통에 크게 관계된다.
언어만을 사용할 경우 진의가 상대에게 명확히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비언어적인 수단이 동원된다고 할 수 있다.
전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그와 같은 비언어적인 수단은 전혀 원용되지 않는다. 소리의 억양이나 침묵 같은 것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어느쪽이든 얼굴을 맞대고 말할 때보다 말수가 많아지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종종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 언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의 진의가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되느냐 하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많은 언어를 사용해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와 같은 일들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 애매모호한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논리와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A"의 부정인 "비A"를한번 더 부정하면 "비 비A"란 형태로 되지만, 형식논리에 있어서는 "A"와그이중부정인 "비 비A"는 똑같다. 그럼으로 "A"-"비 비A"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런데 언어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 "좋다"를 이중부정하면 "좋지않은것이 아니다"로 되지만, "좋다"와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에서는 서로 다른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결코 같을 수 없다.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언어만으로 이뤄질 때, 언어의 논리가 형식논리와같다면 서로의 진의는 상당히 명확히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언어의 논리는 형식논리와는 달라 애매한 말장난의 함정이 가득 차있다. 언어만의 경우는 말장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진의가 잘 전달되지않는다.
요컨대 형식논리가 디지털적이라고 한다면 언어의 논리는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논리 안에서밖에 사고할 수 없는 인간도 또한 아날로그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컴퓨터는 형식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디지털적이다.
그렇다면 "디지털-형식논리-컴퓨터"와 "아날로그-언어의 논리-사람"과는대립관계에 놓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 대립관계를 이제부터의 사회에 그대로적용할 수는 없다. 컴퓨터통신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대화)하는 자리에서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돼가기 때문이다.
컴퓨터통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다. 거기서 주로 사용되는 것이 언어다. 더구나 글로 쓰는 언어이기 때문에소리의 억양이나 침묵을 원용할 수는 없다.
즉, 이제부터의 사회는 디지털의 컴퓨터통신 안에서 아날로그인 언어의 논리가 강력하게 복권돼 가는 것이다. 디지털에 의지해 아날로그의 운영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컴퓨터통신에 있어서는 글로 말을 하는 것이 싫은사람일지라도 언어의 논리만으로 상대에게 진의를 정확히 전달하지 않으면안된다. 그것이 잘 되느냐 안되느냐가 커다란 테마가 될 것이며, 그 어려움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하는 커뮤니케이션쪽에 박차가 가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언어의 논리로 사고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21세기적 인식으로의 수정도 이제부터 강하게 요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