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4);도입기 (3)

우리나라에 역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외국 컴퓨터회사는 IBM이다. 첫 발을디딘 컴퓨터회사가 IBM이었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그다지 놀라운 것은 못된다. 60년대이후 80년대말까지 세계 컴퓨터 역사는 바로 IBM의 사사라고 해도과언이 아니었을만큼 시장지배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IBM은 64년 3세대 컴퓨터기종의 선두주자 "시스템 360" 발표를 계기로 세계컴퓨터업계 왕좌를 거머쥔다. 80년대말까지 IBM은 세계시장에서 50% 이상의점유율을 기록, 확실한 1당체제를 구축했으며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IBM이 한국에 진출한 1967년은 IBM에게는 "시스템 360"시리즈가 없어서 못팔던 시기였다. IBM의 한국진출 계기는 바로 이같은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않다.

67년 4월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된 컴퓨터가 "IBM 1401"이라는 사실은 앞서밝힌 바 있다. 당시 IBM은 두가지 조건을 붙여 발표된 지 8년이나 지난 구형2세대 컴퓨터 "IBM 1401"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공급했다. 그 조건의하나는 "IBM 1401"을 통계국이 당초 도입키로 했던 "시스템 360"이 인도될때까지만 잠정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또하나는 도입 즉시 컴퓨터 활용에 수반되는 인력교육과 지속적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IBM한국법인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두번째 조건에 따라 IBM은 67년 4월25일 서울에 자회사 "주식회사 아이.비.엠.코리아", 영문으로 "IBM KOREA,Inc."를 출범시키게 된다. 사실 IBM은이보다 앞서 한국진출을 계획하고 현지법인 설립에 대한 시장조사 및 타당성조사에 나섰던 적이 있었다.

IBM은 63년 미국 본사에 근무하던 한국인 이주용(현 한국전자계산회장)에게한국지사장 직함을 주고 한국에 파견, 시장조사를 겸한 영업활동을 수행케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한국은 IBM의 영업망 확장대상 국가가 되지 못했다. 이주용의 회고에 의하면 3공화국 초기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백달러에도 못 미쳤고 국민총생산(GNP)은 IBM의 연간매출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월간 "경영과 컴퓨터" 1987.2)

컴퓨터를 도입하겠다는 기관이나 기업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IBM은 홍콩이나 일본주재 영업대표들을 파견, 한국진출을 타진했으나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참고로 IBM의 자회사가 설립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를 살펴보면 호주(32년).일본(37년).필리핀.인도네시아(이상 38년).태국.버마.인도(이상 52년).

싱가포르(53년).뉴질랜드.말레이시아(이상 55년).대만(56년).홍콩(57년).

스리랑카(62년) 등이다.

IBM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로부터 현지법인 설립을 요청받았던것이다. IBM으로서는 경제기획원의 "IBM 1401" 도입을 계기로 여러 기관에서컴퓨터 도입에 관심을 보인데다 마침 한국정부가 외자도입을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적극 권장하고 있던 터여서 현지법인 설립을 마다할 이유가없었다.

이에 따라 IBM은 미국외 해외지역을 관장하던 IBM월드트레이드코퍼레이션을통해 67년1월 경제기획원에 외국인투자인가 및 기술도입계약 인가신청서를제출하고 같은해 3월 외자도입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게 된다. 출범 자본금은 95만2천 달러(4천7백25만원)였고 18개월 뒤에 1백40만 달러(7천20만원)를 추가 출자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주식회사 아이.비.엠.코리아"(약칭 한국IBM)출범에 앞서 IBM은 50년대 말부터 주한 미8군 영내에 한국인 직원을 상주시켜 시스템 교육 및 유지보수를담당해오고 있었다. 60년대 중반까지 미8군은 한국정부도 갖지 못한 컴퓨터를 대구컴퓨터센터에 2대(IBM 7010와 IBM 1460), 부평보급창에 1대(IBM 1460), 용산사령부에 1대(IBM 1130) 등 4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IBM이 서울에 연락사무실 겸 영업사무실 역할을 하는 비법인 형태의지사를 두게 된 것은 60년 초반이었다. 경제기획원이 1961년3월 국세조사 간이센서스와 농업센서스 처리 등을 위해 IBM으로부터 1백30대의 천공카드시스템(PCS)을 AID차관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IBM한국지사는 바로 미본사의 지시를 받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직원들을일본IBM에 파견, PCS 위탁교육을 비롯한 유지보수를 담당하게 된다. 또 미8군의 컴퓨터 유지보수와 간헐적이긴 하지만 PCS를 납품하는 등 영업활동도수행했다.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요원들은 IBM이 직접 채용한 사람들이었다.

이 당시 조사통계국 직원으로서 IBM한국지사에 의해 일본에서 PCS교육을받고 훗날 우리나라 정보산업 개척자로 변신하게 된 이들이 이지상(현 한국소프트웨어써비스 대표).한필봉(대한통계협회 전문위원).김동희(전 동양시스템산업 대표) 등이다.

한국IBM은 67년 4월25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 8백40호에서 정식 출범했다. 초대 사장은 미본사 직원으로서 한국IBM 설립과정에 직접 관여했던루이스 B스탠트였다. 창설 멤버로는 스탠트사장 외에 미8군 프로그래머 출신의이정희(여.90년 정년퇴임).김영수(70년 퇴임.미이민) 등과 미8군 PCS기술요원 손용호(한국IBM영업관리본부장 역임.90년 사직)를 비롯 오영전(재직중).

윤영훈(77년 사직).정우진(87년 사직) 등 IBM한국지사 소속 요원 6~7명이었다. 출범 사무실이 된 반도호텔 8백40호는 15평 남짓한 크기에 사무용 책상2개와 손님접대용 소파 하나가 고작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아이비엠 25년 발자취")

한국IBM은 이후 같은해 6월 사무실을 서소문 삼령빌딩으로 옮기고 조완해(87년 사직.현 한국유니시스 사장).김성중(91년 사직.기흥정보시스템대표)등신입사원을 뽑아 창업 첫해 직원을 24명으로 늘렸다. 71년까지 한국IBM의직원은 현사장 오창규(68년 입사).전무 서치영.김형회(이상 69년 입사) 등이입사, 87명으로 증원됐으며 영업실적에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 기록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공식문서기록을 보면 67년 4월 "IBM 1401"의 도입을 시발로71년말까지 5년 동안 경제기획원과 락희그룹(현 LG그룹) 등 35개 기관 및 기업들이 36대의 컴퓨터를 도입한 것으로 돼 있다. 그 내역을 보면 IBM 13대,스페리랜드(유니백) 8대, 후지쯔(화콤) 5대, CDC(CDC 및 사이버) 4대, NCR 3대, 버로우스 2대, 디지탈(PDP) 1대 순이다.

한편 한국IBM이 출범한 직후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기업 투자유치 방침에 따라 70년대 초까지 미컨트롤데이터(CDC).미플랜클럽("유니백"컴퓨터판매회사).미스페리랜드(현 유니시스로 합병) 등 컴퓨터 회사들이 직접 또는합작 형태로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또 일본후지쯔.미NCR(현 AT&T GIS).

미버로우스(현 유니시스로 합병) 등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들이 대리점 형태로 한국에 진출한다.

이 가운데 CDC는 IBM에 이어 두번째로 67년 9월 5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컨트롤데이터코리아(CDK)를 설립했다. CDK의 출범 목적은 컴퓨터 판매보다는전자공업진흥법과 외자도입법을 배경으로 하는 반도체공장 건설이었다. 당시CDK처럼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진출한 회사들을 보면 페어차일드(66년5월).시그네틱스(66년 8월).모토롤러(67년4월)등이 있다.

CDK는 초기에 반도체 조립에 전념하다 6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전자계산실에 대형기종 "CDC 3300"의 공급을 계기로 컴퓨터 판매에 본격 나섰다.

CDK의 초기 멤버는 CDC소속의 민병래(사장),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의 이규설(현 한국전자사무기 대표)과 이지상, 미8군 소속의 이덕순(전 삼보소프트웨어사 장.현 한국OEC 대표) 등이었다.

68년 10월 미플랜클럽사와 동양물산이 8대2 비율로 투자, 설립된 한국유니백은 당시 IBM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던 스페리랜드(SPERY Land)의 "유니백(Univac)"시리즈를 국내에 직공급했다. 한국유니백 역시 IBM처럼 보건사회부 국립보건연구원에 "유니백1005" 공급을 계기로 출범했다. 창설 멤버는나중에 스페리랜드코리아의 사장을 지낸 해리화성김을 비롯 경제기획원 소속한용석과 이달호, 생산성본부의 육종국 등이었다.

한국유니백은 71년 3월 스페리랜드(나중에 스페리로 개칭)가 2백만 달러를출자해서 설립한 스페리랜드코리아(나중에 스페리주식회사로 개칭)에 직원대다수를 인계하고 판매전문회사에 탈바꿈했다.

IBM보다 더 긴 기업역사를 가지고 있는 NCR의 한국진출은 67년1월 동아무역과 대리점계약을 통해서였다. 동아무역은 이후 75년 11월 NCR의 국내 판매및 지원을 위해 동아컴퓨터를 출범시킨다.

우리나라 컴퓨터역사에서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도입기는 이처럼 거인 IBM의 상륙을 필두로 기라성 같은 미국회사들의 진출 러시를통해 컴퓨터 활용에 대한 이해가 무르익어간다.

<서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