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면 인쇄회로기판(PCB)시장에서 국산 페놀원판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90%를 훨씬 넘는 높은 자급률을 보이며 일본의 외풍속에서도 꿋꿋이 견뎌왔던 국산 페놀원판이 최근들어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새로운 강자를 만난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패놀원판시장을 낙관, 창사이래 최대 규모의 설비증설을추진해왔던 국내업체들로서는 본격 가동을 코앞에 두고 몹시 긴장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수요처인 국내 단면 PCB업계의 경기도 갈수록 내리막길을걷고 있다.
현재 중국산 페놀원판의 대표주자로 업계의 신경을 특히 거슬리게 하는 업체는 중국마쓰시타사. 실질적인 중국업체에 의해 제조된 페놀원판이 아직까지는 품질면에서 국산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이 되고 있지만상대가 마쓰시타라면 얘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상해에 본거지를 둔 중국마쓰시타의 생산능력은 대략 월 30만장 안팎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초 중국과동남아시장에 주력할 것처럼 보였던 마쓰시타가 "11달러대"라는 저가로 한국시장까지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마쓰시타 특유의 지명도와 품질에 "저가"라는 무기까지 갖추게된 것이다.
물론 중국마쓰시타의 원판은 일본마쓰시타 원판의 품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세계적으로 페놀원판의 품질이 상당히 상향 평준화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중국산 페놀원판이 국내시장을 넘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의 단면PCB 생산이 크게 위축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단면PCB생산국으로급부상하고 있는데다 대만.한국.일본 등 세계 페놀원판시장을 주도하고 있는주요 업체들의 잇따른 설비증설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 이외에도 중국에 거점을 확보한 일본 페놀업체들과 중국 및 대만업체의 국내진출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특정업체에의존했던 PCB업체들이 향후 원판파동의 재연을 막기 위해 국내외로 거래선을 다변화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덕산업에 이어 국내 제2의 단면PCB 생산업체인 L사는 상당량의페놀원판 구매를 대만 장춘사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인지역에 밀집한중소 단면PCB업들도 보통 값이 20~30%가량 싼 중국산 저가 페놀원판을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소업체의 경우 물량이 워낙 작아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대형업체들의 움직임이 몹시 걱정된다"며 "세계 최대 단면업체인 CMK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스미토모를 제외하곤 상당수 원판업체들이 중국을우회, 어떤 방법으로든 한국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다"고 보고 있다. 최근 PCB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태일정밀의 한 관계자는 "태일이 PCB사업을추진한다는 소문을 듣고 원판업체들이 공급을 의뢰했으나 중국산과 상당한격차를 보여 거절했다"며 "PCB도 결국 가격이 사업의 성패에 직결된다는점에서 PCB업체들이 최상품의 경우 1장당 9달러대에 불과한 중국원판을선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같은 PCB업체들의 철저히 가격에 의존하는 원판구매 추세는업계의 채산성 회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산 PCB의 품질개선과 국제경쟁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 및 대만산 페놀원판의 선호는 세계 최대의 페놀원판 생산국으로부상하고 있는 국내 원판업체들의 내수기반을 위협, 전체 국내 PCB산업발전에도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PCB의 고밀도.고신뢰화 요구로 PCB에서 원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중국산을채용할 경우 장차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근본적인 원인이 PCB전.후방업종의 전근대적인 가격체계에 있는 만큼 차제에 원판-PCB로 이어지는 공급가격의 현실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