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도체산업 침체 늪 탈출

구소련의 붕괴이후 침체의 나락에 빠졌던 러시아 반도체산업이 기지개를켜고 있다.

영국 컨설턴트기업인 퓨처 호라이즌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반도체 총생산량은 전년비 10% 늘어난 3억8천5백만달러를 기록, 5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도 7% 이상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출도 지난 93년에 31만6천달러라는 미미한 규모에서 95년에는 무려 60배가넘는 1천9백40만달러에 이르러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반도체산업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는 청신호는 이외에도 많다.

대형 반도체업체들이 러시아에 연구소를 속속 개설하거나 외국 자본의 유입도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의 투자은행가인 로버트 타우빈씨는 "러시아 반도체산업이 정상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낙관하며 그랜트 운터버그 타우빈 러시아 펀드에대한 투자액을 5천만달러 더 늘렸다.

러시아 반도체산업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후반. 구소련 해체와 함께 반도체업체중 90%에 달하는 1백30여개의 공장이 그동안문을 닫았다. 그동안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등으로 제조비용만도 4천%나뛰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반도체기술도 서방국가들에 비해 낙후를 면치 못한 상태다.

미세가공 분야에서 대부분 업체들이 실리콘 웨이퍼 위에 찍어낼 수 있는회로선폭은 3um. 이는 80년대 초반 IBM의 XT급 PC에나 채용되던 기술이다.

현재 반도체 회로설계의 주류는 대부분 1um이하이며 몇몇 주도적인 업체들은0.3um까지 실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도 뒤떨어진 수준이다.

그동안 러시아 반도체산업이 침체를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 최대의반도체업체중 하나인 미크론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업체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12개 업체중 하나다.

모스크바의 하이테크단지인 젤레노그라드에 소재, 31년의 전통을 자랑하는미크론사는 한때 서방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이 업체의 몰렉큘라 일렉트로닉스 연구소는 갈륨비소 회로분야등의 기초연구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크론의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예브젠시 고르네브씨는 지난 85년에이미 1.5um의 클린룸을 보유, 최신기술의 칩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10년이지난 지금도 이 클린룸을 능가하는 다른 첨단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인정했다. 다시 말해 그만큼 발전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 미크론사은 현재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등 개도국에 자사 칩을 수출하고있는데 디지털 시계등에 내장되는 저가 칩은 세계시장의 20% 정도를 차지하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칩은 마진율이 낮기 때문에 신규설비나 연구개발에 대한투자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이 업체의 총매출실적은 2천만달러에불과, 결국 현재는 모든 기초연구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따라 미크론사는 외국업체와의 합작사 설립을 통해 활로를 개척한다는전략아래 홍콩의 전자업체인 후아 코 일렉트로닉스로부터 1천8백만달러의자본을 끌어들여 1um칩 생산라인을 구축, 가동에 들어갔다.

이 업체는 동유럽의 저렴한 장비를 도입, 2월부터는 본격적인 칩의 양산에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러시아업체들은 외국업체와의 합작이나 협력을 통해 기술이나설비의 낙후된 상황을 극복하고 사업 활성화를 적극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화가 부족한 러시아에서 외국 자본의 유입은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때문이다.

러시아정부는 지난해 1월 "전자산업발전 특별기금"이라는 기구를 발족하면서하이테크 부문에 일정 예산을 지원했지만 반도체나 컴퓨터, 통신업체들에배당된 금액은 총1억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민스크에 위치한 인티그럴사는 지난해 한국의 LG반도체와 반도체 기술및 장비를 제공받아 저가 칩을 생산키로 합의했으며 앞으로 99년까지는 전세계적으로 웨이퍼 물량부족 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렘캐피털이라고 하는 업체는 러시아 원자력부와 공동으로 이전에 플루토늄을정제하던 공장에서 고순도 실리콘 웨이퍼를 양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 반도체산업이 지난 10년동안 침체에서 벗어나 재도약과 함께과거 기술입국의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과 시간이필요하다는 것이 서방세계 시장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러시아의 불안한 정정등 아직도 외국업체들의 본격적인 진출을 주저케 하는요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구현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