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반도체 장비업체간 잇단 "한국행"..배경 뭔가

반도체 핵심장비의 국내생산이 급진전될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해외 유력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단독 또는 합작투자를 통해국내생산에 적극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서 국내생산 추진계획을 발표한 업체만 해도 퓨전시스템.이튼.지너스 등 3개사에 이른다. 또 케이씨텍도 조만간 일본업체와 합작으로 로(퍼니스)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는 세계 반도체 전공정장비 분야에서는 하나같이 경쟁력을 갖고있는 회사들이다. 퓨전시스템은 자외선 가열장비(UV BAKE)와 플라즈마식각장비인 애셔 부문에서, 이튼은 이온임플랜터, 지너스는 CVD 및 이온임플랜터 부문 등 해당시장에서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업체들이다. 반도체업계 전문가들이 올들어 잇따르고 있는 해외 장비업체들의 국내생산 움직임을 눈여겨 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조립장비나 유틸리티 등 주변장비에 치우쳐 있는 국내 반도체장비산업이이들 업체의 상륙으로 전공정 핵심장비까지 상당부분 국내에서 생산함으로써질적인 성장과 더불어 산업균형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유력 장비업체들이 이처럼 앞다퉈 국내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시장의 잠재력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데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은 지난해(1백50억달러) 기준으로 세계시장의 10%에 달했으며, 2000년경이면 7백억달러에 달해 20%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단일국가의 생산물량으로는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또 우리보다 산업규모가 큰 미주 및 일본시장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장비업체들이 선점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조기 국내생산으로시장선점효과를 극대화할 경우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 힘 안들이고 매출확대가 가능한 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계산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반도체 강국으로급부상하고 있는 아.태지역 국가의 원활한 장비공급을 위한 생산기지로 한국이 적격이라는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D램 생산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맨 파워"를 일단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다 생산과 더불어 장비의 시험장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이야말로 아.태지역 시장공략의 교두보로더할 나위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천안 외국인 공단입주를 추진하던 이튼이 방향을 선회해 송탄지역에부지를 마련, 8월을 목표로 이온임플랜터의 조기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국내에서 생산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있다. 이를 신호탄으로 외국인 공단 입주를 희망하던 상당수의 업체들이 조기생산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어 상반기내에 2~3개 장비 및 재료업체가 국내 생산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다 수요업체인 반도체 3사의 강력한 핵심장비 국산화 의지가 해외유력 장비체들의 한국행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3사는 최근스테퍼 등에서 엿보이는 반도체장비의 무기화 조짐에 적극 대응하고 적시 제품개발 및 양산을 위해서는 핵심장비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도체 3사는 이를 위해 장비채용시 국산화 계획서를 첨부시키는가 하면자사의 설비투자 계획을 장비업체에게 알려줘 국내생산을 유도하고 이에 미진한 업체에게는 장비구매를 기피하는 등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AMK.램리서치 등 세계적인 전공정 장비업체들이 지난해천안에 조립공장과 AS센터를 건립한 것도 바로 이같은 반도체 3사의 노력과시장선점효과를 노리는 이들 업체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수있다.

업계는 일단 올해를 기점으로 핵심장비의 국내생산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보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올해는 수요가 적고 다양한 선진기술이필요한 측정 및 테스트 장비를 제외한 CVD.스퍼터.이온임플랜터 등 주요전공정 장비의 국내생산 기틀이 마련되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반도체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도 이같은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활용해나갈 경우현재 총 수요의 20% 수준인 국내 생산비중이 97년 말에는 45%까지 수직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핵심장비의 국내생산을 한층 가속화하기 위해서는장비에 비해 구성부품에 대한 관세가 더 높은 역관세를 시정하는 등 장비국산화 기반구축을 위한 제도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