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1);프롤로그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산업이 죽어가고 있다. 90년대 중반이후 성능이 뛰어나고 고객사후지원이 확실한 외국 소프트웨어가 범람하면서 국산제품의 경쟁력이 나날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문화의 최대 유산인 한글정보화의 방향이나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에서조차 갈수록 우리나라 기업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소프트웨어가 속해 있는 정보산업은 미래전략 산업으로서 우리나라 미래를떠받치고 있는 지주의 하나이다. 이 지주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부존자원이 크게 빈약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산업전체에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산업측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분야는 자본 없이도 창조적 아이디어만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했었다. 실제 90년을 전후하여 특출난 아이디어를 가졌던 몇몇 가난한 젊은이들이 단시일내에 상업적 성공을거두는 신화를 창조해 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80년대부터 정책의 우선순위 차원에서 소프트웨어에대한 투자의욕을 보여왔다. 여러 관련분야의 표준과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적제품의 개발을 정부가 직접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또 젊고 유능한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지원금제도의 신설 등이 잇따랐다.

8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컴퓨터용 한글코드 제정을 비롯 한국형 컴퓨터운용체계(OS)의 개발,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개발계획(스텝2000) 등의 프로젝트를수행해 오고 있다.

또 정보통신진흥기금.소프트웨어 창업보육센터.창조적아이디어 공모사업등각종 정책지원금제도 등도 신설했다. 지난해에는 연간 1천억원의 예산을소프트웨어산업 육성에 투입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국산제품을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의무적으로 구매해주거나 최소한 우선 구매토록 하는반강제적 권장제도 등도 병행해 왔다.

그러나 산업정책에서 정부가 전략적으로 깊게 개입할 수 있는 부문과 그렇게해서는 안될 부문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용법이나 기계적 원리가 변하지 않는 TV등 가전제품은 정부가 적극 개입할 경우 기업의 노력여하에 따라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기술동향이나사용환경 또는 시장주도회사들이 수시로 변화되는 경우 정부의 깊숙한 개입은 자칫하면 어설픈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그간 추진돼온 정부주도 프로젝트는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거나 그결과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가전제품처럼 여긴 결과이다. 지원금제도는 현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좇아 담보능력이 있는 기업만 얻어 쓸 수 있는 파행적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무 효율성이나 생산성 향상이 궁극적 목표인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형편없는" 제품을 구매해서 쓰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육성의지는 관련업계에 오히려 부담으로 와닿았고 결과적으로 관련 제품의 외국산 의존도만 더 심화시키고 말았다. 90년대 들어 컴퓨터환경의 보급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사용자들의 제품선택에대한 안목과 폭이 다양해지면서 일방적 개입형식의 정부정책은 설 땅을 잃어갔다. 정부의개입은 처음 의지와 달리 결국 부작용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소프트웨어산업이 죽어가고 있는 모든 책임은 정부에 귀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에게 정부의 의지는 한때 큰 힘이 됐던 것이사실이다. 기술이나 노하우 부족에 따른 제품경쟁력의 한계를 일시적이나마정부가 극복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적 차원에서 기업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거시적 안목을 키워주지 못했다. 기업들도정부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줬을 때 내부의 힘을 배양하는 노력을 보여주지못했다. 당연히 사용자들의 안목이 향상되고 시장개방과 함께 외국제품들이밀려들자 기업과 국산제품들은 자생력을 잃어 갔다. 이에 따라 미봉적이고근시안적일 수밖에 없었던 정부정책은 겉돌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산업의 방향은 90년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왜곡돼 갔다.

현재 국내에서 순수하게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를 표방하고 있는 기업은 불과10개 미만이다. 소프트웨어 토종기업은 매년 줄어들고 대신 덩치가 큰 하드웨어에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얹어파는 이른바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매출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95년말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분야 매출은 2조5천5백억원 정도로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99%로 추산되고 있다. 그나마 매출대부분은 순수한 의미의 소프트웨어라기 보다는 소프트웨어를 작동할 수있는 하드웨어가 포함된 즉,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총매출을 단순히 합친 것에불과하다.

이를테면 소프트웨어 용역과 하드웨어를 함께 판매하는 SI업체들의 매출합계인 것이다. 2조5천5백억원 가운데 하드웨어와 외국제품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소프트웨어 개발용역이나 국산제품 판매 등에서 얻어진 매출은 이 가운데10%, 2천5백억원 미만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보통신산업 환경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95회계연도 한해에 거둬들인 제품 판매액은 무려 59억3천만달러,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4조7천5백억원에 이른다.

미국에는 순수 소프트웨어의 연간 매출액이 10억달러가 넘는 곳만 10여개사나 된다. 5억달러가 넘는 곳도 10여개, 1억달러가 넘는 곳은 부지기수다.

패키지와 라이선스계약 비용으로 얻어지는 미국의 순수 소프트웨어 매출 합계가 우리나라 연간 수출액의 절반에 해당된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이 이처럼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제도적 뒷받침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정책의 기조는 할리우드영화산업과 함께 소프트웨어산업을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2대 지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에 추월당한 자동차.전자.조선.기계 등과달리 소프트웨어는 이들 국가에 절대 추월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로 미국의자존심이다. 미국 정부는 따라서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있을경우 즉각 제재에 나선다. 94년까지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95년부터는 WTO(세계무역기구)라는 도구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그 형태는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이나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칼(무기)로 나타난다.

또 이른바 각국에 압력을 가해 소프트웨어의 리버스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리버스엔지니어링은 특정 소프트웨어를 개조하거나 변형 또는 일부 소스를원용하여 또 다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정부도 최근 프로그램 보호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허용하자는 업계의강력한 의견에 직면하고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국측의 압력으로 그 미래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의 자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지원은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이다. 직접적인 지원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매우 강력한 힘으로 그뒤을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 정부가 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들을 통해 특정한 "국산제품 우선구매"를 강요함으로써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있다는 얘기는 아직 흘러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소프트웨어산업 지원정책은 어떤가. 첫째로 관료적이다. 둘째로 컴퓨터환경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마직막으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관료성은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정책의 기조가 이를테면 전시적이고 도식적이다라는 것이다. 예컨데 "스텝2000"를 보면 2000년대 소프트웨어기술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막연한 방침아래 몇개의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과제당몇억원 내외의 지원금을 "시혜차원"에서 제공하는 것 등이다. 아울러 분야도많고 여러 기반기술이 요구되는 교육용 소프트웨어 표준화개발에 불과 4천만원의 지원예산이 책정된 것은 정부정책이 얼마만큼 관료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95년 한햇동안 연구개발(R&D)비로 쏟아부은 돈만 무려 8억5천달러, 우리 돈으로 7천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컴퓨터 환경에 대한 몰이해는 한국형 운용체계(OS)라는 이름으로 추진돼결국 수백만달러의 외화만 낭비하고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K-DOS"프로젝트에서잘 나타난다.

PC용 운용체계의 개발은 여타 소프트웨어와 달리 전세계 PC회사들의 일관된지원을 얻어내야 함은 물론 컴퓨터 기술환경의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있어야만 가능한 사업이다. 즉 운영체계의 개발은 거기서 수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컴퓨터환경의 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다.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에서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경우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테면 기업들에게 밥상을 차려 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밥을 짓고 반찬을 장만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환경을조성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결국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산업을 살리기 위해 보다 급한 것은 기업들의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닌,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냉철하게 짚어보고대안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평범한 진리같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가장 빠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