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행
고대 중국의 한고조(유방)를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중에 하나인 한신은 처음 직책이 창고장이었다.
그 당시에 창고에 들어있는 물건을 도둑맞지 않고 관리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고, 이 때문에 창고장의 모가지는 남아나질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때에 창고장 한신의 직무수행 형태는 좀 특이했다. 다른 창고장 같으면 품목별로 일일이 셈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할 판인데 한신은 셈은 하지않고 엉뚱한 짓만 하는 것이었다. 즉 창고를 말끔히 비운 다음 품목별로물건을 쌓아놓는 방식만 한나절 넘게 그려주고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한 것은 부하들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몰래 망을 보고 있겠지,아니면 내부에 고해 바치는 첩자가 있을 것이란 추측때문에 조심스레 그려준그림대로 물건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신은 주막집에서 낮술을 몇통이나 마시고 곯아떨어졌다는 전갈에 모두들 좀 모자라는 창고장이 왔다고수군대며 이 기회에 한몫 잡자고 너도나도 한개씩 슬쩍하며 불쌍한 창고장모가지가 내일 날아가는 상상만 했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작업반장이 창고장 한신에게 작업종료를 보고하자, 한신이 창고에 쌓아놓은 것들을 점검하며 뜻밖에 매우 만족해 하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앞으로는 물품을 꼭 이런 형태로 쌓아야 할 것을 재삼 강조하는것이었다. 부하들 모두가 숨겨놓은 물건을 한시바삐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 청천벽력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창고장 한신은 작업반장으로 하여금 물품장부를 가져오게 한 다음, 종목별로부족수량을 일일이 불러주며 이번 한번만은 특별히 용서를 해 줄터이니 각자숨겨놓은 물건들을 모두 창고에 쌓아놓으라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1개의착오도 없이 없어진 물건의 숫자를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닌가. "우리 창고장귀신 창고장" 이런 소문이 병영에 퍼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한신은 그 당시 오늘날의 곱셈과 데이터베이스(DB) 원리를 터득해사용하지 않았는가 싶다. 품목별로 가로세로 위치만 정해주면 일일이 셈을할필요가 없음은 오늘의 우리들이야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귀신 그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물결속에 살아가며 데이터, 데이터베이스(DB), DB관리시스템(DBMS), 분산DB, 멀티미디어 DBMS 등 새롭고 다양한 용도의 용어들을무수히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을 한신이 고안한 창고에 비유한다면매우 재미있는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한신이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나, 개인이 슬쩍하기 위해 관심을 가졌던 물건들, 그것은 소위 우리가 매일 떠들어대는 데이터인 것이다.
그리고 한신이 일정한 형태로 창고에 품목별로 쌓아놓았을 때 그 창고를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당물건(데이터)을 요청하면 물건을 찾아서 숫자만큼 반출하고 남아있는 형태를 보면 즉시 재고수량을파악할 수 있는 조직화 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건의 출납을 점검하고 재고수량을 한눈에 항상 파악하고있는 창고장 한신의 역할은 바로 DBMS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러한 창고가 여러지방에 떨어져 있어서 한신과 같은 창고장들이 각각 무선전화기를 들고 서로의 출납, 재고정보를 주고받도록 되어있는구조가 분산데이터베이스이며, 나아가 예전에는 없었던 비행기(오늘날에는멀티미디어 데이터)와 같이 야외에서나 보관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있던 대형물체도 부품별로 분해하는 기법 등을 동원해 (공간을 최소한 차지하도록) 보관 관리할 수 있도록 창고장 한신의 역할을 현대화한 것이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흥미있는 고대와 현대사이에 타임머신인가. 한신의 창고직이 오늘날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이라는 컴퓨터 용어에까지 실릴 것이라는것을 명장 한신은 예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