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반도체업체 잇단 방한 배경

올들어 해외 반도체 공급업체들의 영업담당 책임자들의 방한이 줄을 잇고있다. 그중에서도 통신용 반도체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내한이 두드러지고있다.

지난달에는 일진그룹과 합작사 설립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 IDT사의영업담당 부사장 다니엘 루이스가 내한, 국내 대리점인 유니퀘스트사와 함께한국지사 설립을 위한 시장조사를 실시한 뒤 돌아갔으며 레벨원사의 CEO인 로버터 페퍼와 영업담당 부사장 조지 홈즈 일행도 다녀갔다.

또 12일에는 퀘스트사의 루스 그레베 사장, 14일에는 IGT사의 켄 리 사장, 27일에는 선라이즈텔레콤사의 파울 창 사장 등이 내한할 예정으로 있어이달 한달 동안에만도 3명의 사장단이 한국시장을 직접 방문한다. 3월에는지난해말 국내영업을 개시한 뉴코사와 PLX 테크놀러지.다이얼라이트.콤테스트 등의 아시아지역 영업당당 매니저들이 일제히 방문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12일 방문하는 퀘스트사의 사장 일행은 국내 통신장비 생산업체와 자사 비동기전송방식(ATM) 소프트웨어 근거리통신망(LAN) 관련제품의 공동개발을 타진할 예정이며, 14일에 방문예정인 IGT사의 사장단은 대리점인 선인테크놀러지와 함께 자사 ATM 칩 고객사들과 회합을 가질 계획이다.

선라이즈텔레콤사의 파울 창 사장 일행은 한국통신 등을 방문, 국내 전송장비 계측기시장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월 방문예정인 뉴코사는 지난해말 자사 MPEG 압축기에 대한 기술세미나의 성과를 매듭짓기 위해 잠재고객인 한국통신.삼성전자 등 방송장비 세트톱박스 제조업체들과 사장단이 직접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또 PLX.다이얼라이트.콤테스트 등은 대리점 계약후 공식적으로 국내시장 판촉과 대리점들에 대한 기술영업교육을 위해 내한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파워컴전자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한 텔콤사 등 국내에 지사를 두고있지 않은 다수의 해외업체들도 판촉활동이나 대리점 개설 또는 대리점과의업무협의를 위해 내한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구미 반도체업체들을 포함한 통신장비업체들의 "국내시장 나들이"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올해 30여개로 예정된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과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올해안에 전기통신 회선설비 임대부터 국제전화. 주파수공용통신(TRS).발신전용 휴대전화(CT- 2).무선데이터.무선호출등에 걸쳐 30여개 신규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인 국내 통신시장은 한마디로"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규사업자들이 선정되면 이들이 통신서비스를 하기 위해 소요되는 각종통신시스템과 단말기 수요는 폭증할 것이며, 이에 따른 부품의 수요는 엄청날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부품업체들이 신규서비스 사업자가 선정되기 전에이처럼 국내시장 방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지금이 신규서비스권을따내려는 업체들이 한창 기술개발 계획서를 준비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제2휴대전화 사업자 허가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에는정부정책상 그 무엇보다도 기술개발 계획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게사실이다. 제2휴대전화 신규허가때 미 퀄컴사는 한국정부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을 채택함으로써 CDMA 핵심칩 하나로 세계적인 업체로부상하는 신화를 이룩했던 만큼, 해외 반도체 업체들은 이번에도 "제2의 퀄컴 신화"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신규 통신서비스 허가에는 CDMA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적 문제가 없기 때문에 퀄컴과 같은 호재를 누릴 수는 없지만 부품업체로서는 제조업체들이 장비나 단말기에 자사 부품을 채용할 경우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누릴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부품의 특성상 호환가능한 제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특정 칩을 채용한 설계가 마무리되면 이를 대체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통상설계시에 채용된 부품을 지속저으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부품업체들로서는 설계단계에서 공급권을 획득하면 이후의 공급권은"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업체들이 신규 통신서비스 사업권에 매달려 기술개발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이 시장공략의 적기인 셈이다.

더욱이 신규사업권을 노리는 업체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사업권 획득에 유리한 각종 기술지원 등을 제공할 경우 공급선을 잡기는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국내의 사정뿐 아니라 해외시장의 환경도 이들의 국내시장 나들이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퀄컴사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체들의 급격한부침현상이 그것이다.

시설비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드는 D램산업 위주의 반도체 제조업이 뼈대를이루고 있는 국내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부침이 도저히 실감나지 않지만, 기술 하나로 승부를 거는 벤처기업들이 많은 해외시장에서는 자사의기술을 어떻게 제조에 연결시키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되고 있다.

특히 통신용 반도체의 경우 신기술 개발여지가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많고기술력만 있다면 언제라도 독특한 신제품 개발로 승부를 걸어볼 만한 시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조그마한 벤처기업으로 시장에 첫발을 디딘 퀄컴사가 국내 CDMA시장을장악함으로써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물론 해외 반도체 공급업체들의 국내시장 방문은 비단 현재 거론되는 업체로만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업체들이 명함을 내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시장도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즉 그동안 가전.컴퓨터용 위주로 형성돼온 국내 반도체시장은 통신용 시장의 급부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가전과 컴퓨터 시장이 침체국면을 맞이하고 있어 통신용 시장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될 전망이며, 따라서 반도체 유통업체들의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유통시장에서는 이제 누가 컴퓨터용 시장을 장악하느냐가 아닌통신용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업체들의 흥망성쇄가 크게 좌우될 것으로예상된다.

<유성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