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유통업체가 무너지고 있다. 소프트라인과 상운이 부도를 내고 회사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부도규모가 용산 상가 형성이래 최대규모인 2백억원대에 달하는데다 이들이 발행한 어음기일을 통상 3개월로 치면 오는 5월까지크고 작은 부도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빈사상태에 놓여 있는 중소 컴퓨터유통업계의 현황과 원인, 그 대책을 긴급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이번 소프트라인과 상운의 부도는 중소 컴퓨터업체들의 실정을 대변하고있으며 관련업체들로 하여금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해 내내 매기가 부진해 올들어 자금난을 견디다 못한 일부 업체의 경우겨울철 성수기를 눈앞에 두고도 매장을 내놓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는 터에연쇄부도가 발생함에 따라 컴퓨터유통업계 전체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프트라인의 거래업체가 1백여개사에 이르고 부도규모가 2백억원대에 달해상가엔 연쇄부도 0순위.1순위 업체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중소 유통업체들로선 대부분 담보없이 상호 신용거래를 하기 때문에 부도 발생시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는데다 그나마 물건을공급할 곳도 없어지게 돼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체 컴퓨터 수요가 늘고 있음에도 중소 컴퓨터유통업계가 이같은 연쇄 도산의 위기에 몰린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용산상가에서 PC조립상을 하는 H씨는 "지난해 컴퓨터업계에서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조립PC의 퇴조와 가격파괴형 대형 양판점의 등장을꼽을 수 있는데 이 두가지 현상이 올들어 터지고 있는 중소 컴퓨터유통업체의 부도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즉 제품 수요처 실종과 마진 실종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립PC는 그간 부품.주변기기.소프트웨어.소모품 등 컴퓨터 종합 수요자가되어 중간 유통업자로부터 제품을 받아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을해왔다. 이러한 기능을 해온 조립PC의 위축은 중간 유통사의 제품판로 위축으로 이어져 중간 유통업체의 자금난을 가중시킨 요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S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H씨는 "소프트라인이 3월까지는 갈 것으로 보고물건을 줬는데-"라고 말한다. H씨의 말에서 소프트라인의 자금난이 심각한것을 알면서도 물건을 공급했을 정도로 달리 판로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립상 K씨는 "조립PC의 퇴조는 컴퓨터의 성능이 갈수록 최첨단.멀티화하면서 필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세진컴퓨터랜드로 대표되는 가격파괴형 양판점의 등장이 급격한 퇴조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8일 부도를 낸 소프트라인의 경우 소프트웨어 전문유통점으로 출발,불법 복제단속이 강화된 92년과 93년 매출신장을 이뤄 사세를 확장하면서 가격파괴를 표방하며 양판점업 진출을 시도했는데 경영에 무리가 가 대기업에기업매각을 모색했으나 성사되지 못하자 결국 쓰러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가격파괴는 박리다매를 전제로 하는데 중소 유통업체로서는 다매가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마진만 감소, 견딜 수 없는 것은당연한 이치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유통현대화.가격파괴를 앞세워 일부 대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컴퓨터 유통업에 나선 지난해 여름부터 이미 중소 컴퓨터유통업체의 도산은 예정된 것이고 올들어 터진 것일 뿐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김재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