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가전 생산기지화 "한-중 격돌"

아시아지역에서 생산기지화를 서두르는 한국 가전업체들이 비상에 걸렸다.

이 지역에 먼저 진출한 일본 가전업체들이 한국 가전업체들의 움직임에 대응해 생산품목을 늘리고 생산규모를 확대하는 등 시장선점을 겨냥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 가전업체들이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 잇따라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이 지역이 유망 백색가전시장으로급격히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수요확대는 세계 가전시장의 생산및 수요 구심점 이동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을 한.일 가전업체들은 노리고 있다.

한국 가전업체들은 급격한 임금과 지가상승, 그리고 늘어나는 물류비용 부담등 국내 경영여건이 나빠지자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서는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중국 및 동남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기고있다.

그러나 지난 60년대 말부터 동남아 및 중국 등지로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가전업체들이 우리보다 앞서 현지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들 업체는 80년대중반에 이어 90년대에 들어서도 이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등 생산기지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80년대 중반과 90년대에 들어 일본업체들의 대아시아 투자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엔고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확보가 주된 목표였으나,최근에는 이 지역의 백색가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시장을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업체들이 특히 주력해 왔던 AV기기사업은 전세계적인 수요둔화로 하강국면을 맞고 있는 반면,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고부가 백색가전품목은이지역이 잠재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들 품목 위주로 생산기지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업체들의 대아시아지역 투자는 국내의 경영조건 악화를 극복하고 생산거점 확보 및 신규시장 개척을 노리는 한국업체와는 달리 기득권 고수를 위한현지 "생산구조 조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질적인 제품 생산구조도 한국업체들은 당분간 현지 및 인근 제3국 수출을노려 보급형 생산에 주력하고 있지만, 장기간의 현지화작업으로 품질 및기술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일본 가전업체들은 자국내 공장과 과감한 역할분담을 시도하면서 대일 역수출 및 유망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이다.

또 중국에서는 현지시장의 구매력이 신장되자 그동안 주력해 왔던 부품생산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생산을 과감하게 자가브랜드로 전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등지에서도 신규투자와 함께 이미 구축된 태국.말레이시아 등지의 인근 생산기지 및 연구개발조직과 연계한 수직적.수평적 계열화를추진하면서 투자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런 최근의 추세를 고려할 때 가전 신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의 가전업체간 시장쟁탈전이 치열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다.

물론 중국과 동남아지역에서의 완제품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일부 국산부품수출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되지만, 완제품시장을 놓고 국산품은 일본산과불꽃튀는 접전을 벌여야 할 처지다.

또한 일본의 아시아 현지생산 강화는 국산품의 일본시장 공략에도 부정적인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향상된 동남아산일제가전의 대일 역수출은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국산제품의 입지를 더욱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형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