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SF) 「파운데이션」에는 미래를 예측할수 있는 「심리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한다. 수천년 후에 탄생할슈퍼컴퓨터로 인간집단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입력·분석해 그 집단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과학을 통한 미래예측의 가능성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아마도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였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완전하게 이해해 우주의매래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존재하지 않을 知性을 가리켜 「라플라스 악마」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그의 미래학은 다소 엉뚱한 데가 있었다. 1820년대에 톱니바퀴와 축으로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을 만든 영국의 수학자 찰스배비지는 만년에 『1백년 후의 세상을 단 사흘 동안만 볼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되뇌이곤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무녀들이 神託에서 미래의 모습을 훔쳐보려던 아득한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다.

21세기를 불과 몇년 앞둔 오늘 우리 주위에서는 숱한 예측과 예견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에는 고도 정보사회의 장밋빛 청사진에서부터 「디지털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잿빛 상황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보는 눈에 따라서 명암이엇갈리고 있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데 묘미가 있다. 미래를 제대로설계하는 자만이 미래를 향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작 「경영의 새로운 차원」에서 『기업의 새로운 결단은 과거에 대한 구속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내딛는 거보』라고 표현했다. 국가나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시장과 산업을 머리속에 그려내고 미래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그러나 미래는 투명한 유리구슬을 통해 볼 수 있는 선명한 세계가 아니다.

앞으로 나타날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겨냥한 경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열린 「96동아마라톤」과 같이 승부가 간발로 결정되며 마지막 1백에서 차별성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내일을 향해 누가 먼저 쏘느냐도 중요하지만 20세기 말에 쏜 화살이 얼마나 빨리 정확히 21세기의 과녁에 꽂히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