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망명시인과 집배원의 슬픈 우정

"시인을 섬기고 시에 눈뜨게 되면 불행해 진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이삶의 아이러니가 코발트빛 파도가 잔잔이 일렁이는 이탈리아 남부의 외딴섬에서 펼쳐진다.

1950년대초, 칠레의 유명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누와레 분)는 정치적인이유로 칠레 정부로부터 추방당해 이탈리아 정부가 마련해준 지중해의 작은섬을 찾는다. 그가 온 뒤부터 한적한 섬마을에 변화가 일어난다.

마을의 우체국장은 엄청나게 쏟아져 오는 네루다의 우편물을 감당하기 어려워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마시오 트로이시 분)를 고용한다. 망명시인과시골 집배원의 만남은 전혀 이질적인 두 세계의 부딪힘을 상징한다. 예술과 생존, 명예와 비천, 에스프리와 리얼리티, 귀한 것과 천한 것이라고나 할까.

71년에 노벧문학상을 수상한 라틴 아메리카의 양심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그의 전기적 한계를벗어나 이 영화가 상상력의 날개를 자유롭게 펼치게 하는 것은 시인의 대척점에 시인과 똑같은 질량을 지닌 인간으로서 촌스럽고 궁색한 집배원인 마리오를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배운 것은 없지만 얌전한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한없는 외경심을 품고시와 삶과 세상에 대해 질문하며 조금씩 조금씩 네루다의 세계로 스며든다.

특히 네루다에게 미지의 여인들로부터 많은 편지가 온다는 점이 경이롭고 한없이 부럽게 느껴진다. 마리오의 눈에 네루다는 예술과 낭만과 존귀함의 화신으로 비친다.

인자하면서도 무덤덤하게 그를 대하던 네루다도 이 청년의 비루한 겉모습속에 맑은 영혼이 숨쉬고 있음을 발견하고 호감을 갖게 된다. 네루다의 시,네루다의 명상에 감염되어 가며 마리오는 예전에는 무심하게 보였던 하늘과파도와 풀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고 시적 언어의 아름다움과시적 행위의 기쁨을 알게 된다.꼬마 네루다 즉 아마추어 시인으로 변모한것.

그러나 삶이 그렇게 너그러운가. 마리오는 연모하던 마을 처녀에게 네루다의 시구절을 적어 보내며 구애하여 성공하지만, 존귀함의 세계를 넘본 자가치죄당하듯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마을의 수도공사가 정략적으로중단되자 이에 항의하는 공산당 시위에 참여했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진실과정의와 아름다움에 눈뜨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섬마을의 어부로 생애를 마쳤을 그가 시에 눈뜨고 시인을 섬겨서 종래에는 자신을 번제의 양으로 삼고 만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영상언어로 집어내는 레드포드 감독의 시각이 놀랍다. 시에대해 말하는 네루다는 탁 트인 바다와 나무를배경으로 그려내고, 마리오는시인의 집 벽 앞에서 그려낸다.넓은 대자연을 향해 자유롭게 열린 존재인 시인과 각박한 생존에 갇혀 사는 집배원의 고단한 삶을 암시하는 것이다.

<박상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