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파 라디오를 지니고 산에 오르면 간첩으로 오인받던 시절도 있었다.
반공이 국시처럼 여겨지던 시대의 일이다.
무선통신분야의 이용이 제한된 상황에서 관련기술 개발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개인휴대통신(PCS) 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재에도 무선통신분야의 이같은사례는 잔존한다. 휴전선과 인접한 지역이나 산간 오지의 경우 무선통신시설을 구축하는 비용보다 이를 암호화하는 데 드는 장비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이같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간 국내 통신업체들은 낙후된 무선통신분야의기술자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번번이 선진국의 기술장벽에 가로막혔던 것이다. 부메랑효과를 꺼리는 선진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미국 유수의 무선통신 장비업체와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기술개발을 추진했으나 3년 동안 그들이 전수한 기술은 관련장비의 외형 틀이 전부였었다.』
무선통신분야에서 우리는 선진국의 첨단 장비를 제공받는 힘없는 수요자의처지였다.
이처럼 열악한 국내 무선통신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으로 국산 이동통신장비로 디지털방식의 이동전화서비스를 상용화했다는 점은 놀랄 만한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이동전화 서비스의 디지털시대를 열고 누구나 편리한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이 세계시장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할 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이동전화의 상용화는 전기통신 1백년의 역사에서 우리가 세계 최초의 정보통신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기술종속국」에서 「기술지배국」으로 탈바꿈하는 역전의 파노라마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치열한 기술전쟁에서 거친 격랑을 헤쳐 나가야 한다. 선진국이 첨단 통신기술에서 우리에게 추월당하는 것을 마냥 관망하지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