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전산업이 구조조정기로 들어서면서 그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해외 현지생산의 가속화와 그로 인한 국내 생산비중 감소 △정보가전 등 新가전제품 개발 강화 △유통시장 개방 및 수입선다변화 해제 등으로인한 가전 유통체제 변화와 시장경쟁 가열 등 가전산업을 둘러싼 구조조정의요소가 너무 다양해 구조조정 이후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기때문이다.
미국이나 대만처럼 가전제조는 사라지고 유통업체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는지, 일본처럼 전세계 시장을 무대로 종횡무진할는지, 아니면 유럽처럼 어정쩡한 모습을 보일지 현재로선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 가전산업을 대표하는 전자3사의 행보에 비추어볼 때 일본을 좇는 게 아니냐는추론은 가능하다.
우선 해외 현지생산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게 그렇다. 컬러TV 등 일부 제품은 해외 생산능력이 이미 국내 생산규모를 넘어섰으며 올 연말쯤이면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전망이다. 더 이상 국내 가전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시장을 경쟁무대로 삼겠다는 전자3사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생산구조의 변화는 경영방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책임경영제를 해외법인에까지 적용하고 있으며 주요 거점시장에 지역본사를 설치하는 등 다국적 기업의 양태를 띠어가고 있다.
대신에 국내 본사의 기능과 역할은 가전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안점을두는 한편으로 21세기 전자산업 환경변화에 대비한 사업조정쪽으로 변모하고있다. 해외법인에 대해선 간접적인 통합조정 역할에서 더 개입하지 않으려는움직임이다.
전자3사의 가전사업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시장으로 분산되는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무역구조상 가전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방식이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분석과 함께 국내시장에서의 위험을 분산시키자는 의도가 깊게 깔려있다.
아직까지는 전속 대리점을 축으로 한 가전 유통망의 장악으로 별다른 무리없이 국내시장을 공유하고 있지만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는점을 전자3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국내 유통시장의 완전 개방을 전후로해서 양판(혼매)점과 저가판매점같은 유통채널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전속대리점들조차도 변신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국내 가전시장에 태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수입선다변화의완전 해제가 98년으로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의 무역역조를 줄이자는의도로 묶어놓은 수입선 다변화품목을 풀어버릴 경우 전자3사의 가전시장 향유는 더이상 곤란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일본에서 생산된 AV제품이 한국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면 전자3사가 점유하고 있는 몫을 상당부분 내줘야함은 물론 현지의 전속대리점 체제를 급속히 붕괴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그동안 일본 대형 양판점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주저한 이유중 「팔 물건이 마땅치 않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즉 수입선다변화 해제로 일본 가전제품이 마음놓고 한국시장에 들어올 수있게 되면 일본 양판점들의 한국상륙이 활발해지고, 또 이는 전자3사에 비해유통망이 취약한 AV전문업체들과 손잡는 형태로 이어지고 AV전문대리점을 중심으로 혼매를 선언하는 대리점수가 많아져 현재의 가전유통구조에 급격한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산가전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중 일정 부분을 짧은 기간안에 내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전자3사가 국내시장에 안주하는 가전사업 정책을 고집한다면 시장도 내주고 경영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근거가 여기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전산업이 미국이나 대만의 뒤를 잇는 모습을 띠게될 것이라는게 전자3사 스스로의 분석이다.
따라서 전자3사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현지화 전략의 성패 여부가 우리나라가전산업 경쟁력를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여기에 국내 본사가 몰두하고 있는 핵심부품 등 기반기술과 新가전제품개발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사업전환이 실효를 거둘 때 우리나라가전산업의 구조조정은 한 차원 진보를 위한 과도기로 평가 받게될 전망이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