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澤完 한글과컴퓨터 기획이사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SW)를 필자가 일하고 있는회사를 통해 팔아보고 싶다고 찾아온 적이 있다. 그 사람이 개발한 SW는 도스 디렉터리 몇개를 묶어서 하나의 로지컬 드라이브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기능을 비롯해 몇가지 편의기능을 넣은 도스 유틸리티였다. 그 개발자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패키지로 제작할 경우 상당한 물량이 판매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상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완성도를 보완한다 해도 SW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요즘 이런 종류의 도스용유틸리티SW가 팔린다는 것은 쉬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조건 관심이 없다고 돌려보내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콧대가 높아졌다는 오해를살 수 있을 것 같고 그 사람도 이런 헛걸음을 몇번 더 하면서 결국 더 큰 좌절을 하게 될 것 같기에 우리나라 SW산업의 현실을 열심히 설명해 주고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려보냈다.
불행히도 한국의 SW산업은 아직 꽃이 피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개발·생산자, 유통·공급자, 소비자이렇게 세 요소가 제대로 들어맞아야 균형있게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SW산업은 이 세가지 요소 모두가 삐걱거리고 있다. 상당수의 소비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여전히 불법복제를 선호하여 개발업체 매출의 반 이상을갉아먹고 있다.
일례로 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PC사용자들의 절반 이상이 애용하는 모 타자연습SW의 경우 실제 팔린 숫자는 10만 카피가 채 안된다는 사실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한다. 그런데다 지난해부터 느슨해진 당국의 단속을 틈타 기승을부리고 있는 대규모의 CD롬 불법복제는 이제 개발업체들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복제 단속을 하면 외국회사들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인식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전세계가 시장인 외국 SW회사들은 한국시장에서 안 팔려도 망하지는 않지만 한국 SW회사들은 한국시장에서 제품이 안 팔리면 망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유통업체 또한 SW시장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영세한 자본으로 운영하며 덤핑 등으로 SW의 가격질서를 흐려 놓았다. 이런 업체조차도 도산하거나하드웨어 판매 위주로 탈바꿈해 버려 변변한 SW 유통회사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고 참다 못한 개발업체들이 유통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있다.
개발업체들도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윈도의 등장으로 한글화가 불필요해져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완성도 높은 외국 SW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고,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격대비 기대완성도의 수순은 높아질대로 높아졌다.
이에 부합하고자 엄청나게 늘어나는 개발비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견디지 못한 개발업체들은 대기업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일부는 아예 패키지 사업을 그만두고 용역업체 등으로 도태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SW는 문화이며 그 나라의 자존심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문화수입을 아직금하고 있는 것도 문화가 정신, 그리고 자존심과 결부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의 SW산업이 枯死하고있음을 방치해 왔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한국 SW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개발자유통·공급자소비자, 그리고 이 모두를 관장하는 관계당국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우리 SW산업이 제대로 꽃필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를 찾아온 그런 순수한 SW개발자들이 자신의 창의와 기술을 마음껏 살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좋은 SW를 공급하고 그로 인해 제 2의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에서도 수없이 탄생할수 있는 토양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