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영화감상을 끝내고 출구를 향하다가 기둥벽에 붙어 있는 메모판을 보았다. 영화사 측에서 관람객들에게 자유롭게 촌평을 하라고 마련해준것이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메모판에 어지러이 적혀 있는 「느낌」의 내용들을 훑어내렸다.
『이정현의 연기가 놀랍다』는 칭찬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가슴이 찢어진다』는 비통의 신음이었다. 배역의 중요성이나 연기의 몰입정도를볼 때 여고생 이정현은 신들린 새끼 무당이라고 할 만큼 끼가 있었다.
5.18 광주항쟁의 현장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을 피해 달아나다 넘어진소녀(이정현 분)를 구하기 위해 엄마가 달려온다. 모녀의 손이 맞닿는 순간총알이 엄마의 가슴을 뚫는다.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손을 자물쇠처럼 그러쥔엄마의 손을 뿌리치려고 소녀는 발버둥친다. 공포에 질린 소녀는 발로 죽어가는 엄마의 팔을 짓눌러 손을 빼내고 도망친다. 다시 쓰러져 실신한 소녀는다른 시체들과 함께 트럭에 실려가 어둠속의 야산에 암매장당하기 직전에 탈출한다. 그리고 미쳐버린다.
영화는 미쳐 떠도는 소녀의 이야기이고 떠돌다가 만난 절름발이 공사장 인부 「장」(문성근 분)과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미친 소녀를 찾기 위해 역시떠도는 4명의 「우리들」의 방황이 덧칠해져 있다.
그러므로 『가슴이 찢어진다』는 관객의 신음이 과장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엄마를 버리고 도망친 죄의식에 짓눌려 미친 소녀나 「피빛 금남로」의 학살현장을 거의 실제상황에 가깝게 그려낸 장면들이 관객의 가슴을 찢게만드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찢어짐의 양태는 같되, 그 심리적 기저는 확연히 다르다. 한 소녀의 참혹한 불행에 핀트를 맞추면 그것은 「슬픔」이고 금남로의 무모한 학살에 초점을 맞추면 「분노」일 수밖에 없다.
장선우 감독은 슬픔을 컬러필름에 담고 분노는 흑백 필름에 실었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기 전, 철없고 꿈많은 한 소녀의 행복했던 시절은컬러 비디오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컬러 비디오와 컬러 필름 사이에,즉 행복과 슬픔 사이에 분노의 악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행복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슬픔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비극의 회로가 한 소녀의 몸을 관통하고 있고, 그 소녀는 경탄할 만한 솜씨로 가슴을 찢게 한다.
광주항쟁의 역사성을 한 개인의 악몽으로 축소했다는 평도 있으나, 그건혀 짧은 투정이다. 광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서정적 구조의 「광주 읽기」를 택했다면, 오히려 장 감독은 분노보다 슬픔에 더 앵글을 맞췄어야 한다.
마음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리는 슬픔의 씻김굿이었으면 좀더 여운이 긴 작품이었을 것이다.
〈박상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