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출규모가 세탁기·VCR·전자레인지를 제치고 일약 3대 가전품목으로 부상한 에어컨이 과연 올해도 초고속 신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지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에어컨업계는 지난 94년 하반기의 폭염으로 그동안 쌓였던 에어컨 재고물량을 소진하면서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데 이어 지난해는 총판매량 80만대, 매출규모 7천억원대를 돌파하면서 이 사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올해 가전3사와 범양냉방·두원냉기 등 총 7개 에어컨업체들이 세운 96년분 생산계획에 따르면 올해 공급량은 총 1백5만여대로 지난해보다 무려 30%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 업체들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에어컨업계의 총매출은 최소한 9천억원대를 웃돌게 되고 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1조1천억원대에 달하게 된다.
이는 올해 가전업계가 예상하고 있는 컬러TV 총매출규모 1조2천억원보다는뒤지지만 9천억원대 안팎으로 예상되는 냉장고와는 2위자리를 놓고 치열한경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근거로는 컬러TV의 경우 올 하반기에 애틀랜타올림픽·위성방송 特需가 기대되는 반면 냉장고는 지난해말 시작된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1분기중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가량 줄어드는 등 성수기를 앞두고도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냉장고·컬러TV가 완전한 성숙기 제품인 점과 대조적으로 에어컨은지난해말 현재 보급률이 16%를 갓 넘은데다 올초 특별소비세가 5% 인하된 것이 입증하듯이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에어컨시장의고속 신장세를 낙관할 수 있는 단서이다.
그러나 에어컨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에 잔뜩 기대가 부풀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급과잉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에어컨업계의 잠재적인 불안감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에어컨장사가 그동안잘돼도 너무 잘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보다 1백% 가량 증가했는데도 지난해말부터 실시한예약판매가 예상을 초월, 전체 공급계획량의 40%(약 45만대)를 이미 넘어서더위가 닥치는 6월 이후에도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예약판매는 대리점 등 유통단계에서 물량확보를 위해 허위계약이 많았던 지난해와는 달리 내용으로도 충실했다는 점에서 성수기의 수요까지 이미 다 흡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업체들이 기상조건과 시황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는있지만 최소한 완제품 생산 3개월 이전에 부품을 확보해야 하는 에어컨사업의 특성과 당초 물량계획을 감안할 때 선선한 여름이 닥친다면 에어컨업체들은 낭패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특히 수출기반이 미미한 공조기기 전문업체들의 재고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계절상품에 불황과 호황이 반복된다는 주기설도 업계가 지닌 잠재적인 불안감의 하나이다. 지난 91년 무려 58만대가 팔려 업체들이 다음해 생산량을 대폭 늘렸지만 92년부터 2년동안 이상 저온으로 수요가 절반수준으로줄어 업체들이 재고 소진에 골머리를 앓은 것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업체들이 95년부터 예약판매를 도입, 기상변수에 대한위험부담을 분산했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에어컨이 실내공기 조절기가 아닌냉방기 위주로 사용되는 점을 감안할 때 사업 성패의 최대 변수는 기상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무더운 여름이 재연되기를 희망했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