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화인프라" 구축에 눈돌려야

영화업계가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리 영화가 최근 관객동원에 거듭 성공해 그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또 연초부터 우리 영화수출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내일을 낙관하는 영화인들은 이런 현상을 「르네상스」에 빗대기도 한다.

지난 88년 외화 직배가 시작된 후 움츠러들기만 했던 우리 영화가 본격적인부흥기를 맞았다고 말하기에는 성급한 면이 있지만 최근 영화업계가 활력에넘치는 것만은 틀림없다.

지난 3월16일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은행나무침대」가 50만명을 돌파하면서 흥행기록 1위를 달리고 있는가 하면 이달 5일부터 개봉된 「꽃잎」은 예매율 60%의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방화가 오는 5월말까지 1주일 간격으로 10여편을 개봉, 우리 영화 붐을 조성하고 있다.

사실 영화가에서는 4월과 5월이 비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개봉이 몰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것이다.

올들어 협소한 국내 영화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무대로 진입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우리 영화의 해외수출은 물론 외국업체들과의 합작, 외국 영화사들에 대한 지분참여 등 세계시장을 향해 도약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이같은 노력은 아직까지는 걸음마단계에 있지만 우리 영화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처럼 우리 영화가 흥행과 수출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작품의 제작시점이우연히 일치된 점도 있지만 최근 몇년간 영화가에 젊고 유능한 인력이 대거유입되고 수용자층이 다양화하는 등 우리 영화를 둘러싼 환경변화가 상당한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영화의 활력은 대우·삼성 등 대기업의 폭넓은 참여로 제작이 그만큼 활기를 띤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초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은 규모면에서 우리 영화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영화사업에 뛰어들면서 해외진출의 규모도 커져 새로운상황을 맞고 있다. 해외영화사에 대한 대규모 자본참여와 함께 외국 영화사들과 공동제작을 통해 협소한 국내시장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제 30대 대기업 가운데 영화사업을 구상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영화기획자들 역시 우리 영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몇년전에 비해확실히 대기업의 자본을 끌어들이기가 쉬워졌다며 우리 영화의 르네상스를낙관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변화에 힘입어 지난 88년 외화 직배이후 10%대에서 머무르던우리 영화의 관객점유율은 올해 이변이 없는 한 20%선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환경변화가 그대로 우리 영화의 미래를 장밋빛으로만들지는 못한다. 대기업의 참여 등으로 제작여건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10만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우리 영화는 1년에 10여편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한해 만들어지는 극영화가 60여편 정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그 성공비율이 너무 낮다. 영화는 투자비용을 회수할 확률이 절반도 안되는 산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 비율은 영화상품에 대한 자본투자가 무한정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우리 영화의 제작규모는 이처럼 낮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영화산업 참여가 이뤄진 이후 그 완성도와 스케일면에서 지나치게 부풀어 있다.

이런 거품현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우리 영화의 올바른 발전을 해칠 수도 있다.

그것은 애초에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단지 상품의이윤추구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때문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일찍이 여러 분야에서 이런 경험을 겪었다.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그 대표적인 컨텐트인 영화산업은 「황금알을 낳는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산업의확고한 인프라 구축, 특히 우수한 인력양성 없이는 그 결실을 결코 기대할수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영화인프라 구축에 대한 대기업들의 보다 장기적인 정책과 비전, 그리고기획력이 아쉬운 시점이다. 그래야만 모처럼 일고 있는 우리 영화에 대한 열기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