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반도체 인프라구축 서두르자 (7);유럽 사례 (上)

유럽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양과 질적인 면에서 분명 뒤떨어져 있다. 반도체에 관한한 선발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뒤쳐진 것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산업조성이 늦어진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요업체도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필립스·지멘스·SGS톰슨 등 단 3개 업체에 불과하다. 이들 업체들의 생산이 유럽반도체 전체생산의 85%를 넘어설 정도로 유럽의 반도체 산업 저변은 취약한실정이다.

그렇다고 유럽의 반도체산업이 전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다.대학이나 연구소 수준으로는 뛰어난 첨단 기술의 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며 신기술 개발 측면에서도 선도하는 사례가 많다. 다만 이러한 연구성과를 제대로상용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산업적으로 뒷받침할 기반이 약해 대단위투자가 적기에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날로부각되면서 정부가 앞장서 경쟁력 회생을 외치고 나섰다. 특히 유럽통합에앞장서는 몇 나라가 연합해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중소기업의 매수 합병을 통한 규모의 거대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종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반도체 프로젝트는 메가(MEGA)계획이다. 필립스와 지멘스가 손잡고 8억 달러를 투입해 시작한 이 계획으로 유럽은 88년4메가D램의 시제품을 출하할 수 있었다. 메가계획은 미국과 일본에 뒤쳐진D램분야에서의 경쟁력 회복에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메가프로젝트에 이어 나온 것이 차세대반도체공동연구개발계획인 제시(JESSI: Joint European Submicron Silicon Initiative)이다. 첨단고집적 회로 개발을 위해 지멘스·필립스·SGS-톰슨 등 3사가 주축이 돼89년에 본격 발족시킨 제시 계획은 본래 유레카(EUREKA)계획의 하나로시작됐다. 유레카 계획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하던 전략 방위 계획에 대항하여 프랑스가 주창해 결성한 범 유럽 공동계획이다. 주 목적은 전자·통신·로봇·컴퓨터 기술 등의 연구 개발이며 대표적인 성과로는 HDTV개발을 꼽을 수 있다.

제시 프로젝트에는 벨기에·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영국 등유럽내 주요 국가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지난 95년까지 제시가 수행한 프로젝트 수는 총 38개이며 참가 기업과 단체는 2백8개에 이르고 총 비용만도 34억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제시의 주축은 물론 유럽 3대 기업이다. 이 중 지멘스는 D램, 필립스는S램, SGS-톰슨은 기록이 가능한 롬을 개발키로 하는 등 역할분담식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도중에 필립스가 메모리 사업을 포기한데 이어 지멘스가 제시와 결별하고 미국과 일본업체와 공동으로 차세대 D램을 개발키로 결정하자 제시계획은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90년 말 IBM이 제시 계획에 본격 참여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시작해 95년까지 0.5미크론 CMOS기술의 상용화, 8인치 실리콘웨이퍼 기술확보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IBM의 가세는 제시에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깨우쳐주는 계기가 됐다. 이 때부터 미국의 컨소시엄인 세마테크와 공동 작업도 시작됐고 유럽에 생산거점을 둔 외국업체는 물론 그동안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일본과도 차세대 반도체개발분야에서의 협력관계를모색중이다. 이같은 국제협력을 통해 제시 계획은 새로운 힘을 얻어가고 있다.

96년 종결 예정인 제시 계획에서 유럽은 64MD램과 같은 차세대 메모리와이에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 및 재료, 0.35미크론급의 회로 설계 기술 등을 중점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제시의 새 사령탑을 맡은 홀스트 나스코회장은 『앞으로 남은 1년동안 0.35미크론 CMOS 프로세스기술과 12인치 웨이퍼 개발에 총력을 쏟아 유럽 반도체 경쟁력 강화 기반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강조해 유럽 반도체의 회생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