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95」와 「펜티엄프로」로 무장한 고성능 PC시장이 개막되면서 두드러진 현상중 하나가 대표적인 보조기억장치인 하드디스크(HDD)가 본격적인 기가(G)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PC의 짧은 라이프사이클을 대변이라도 하듯 얼마전까지만 해도 1.2G급HDD가 고성능의 자리를 꿰차는가 싶더니 어느새 일각에선 무려 1.8G급HDD가 PC의 기본 사양으로 고개를 내미는 상황이다.
HDD의 고용량화는 필연적으로 두가지 난해한 전제 조건을 수반한다. 「미디어」라 불리는 디스크의 저장밀도를 높이는 것과 고밀도 미디어를 초고속으로 읽어들이는 자기헤드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여러 장의 미디어를 포개어 헤드(슬라이더)의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HDD고용량화에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같은 방법은 원가가 높아진다는 단점으로 인해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결국 고밀도 미디어 제조기술과 헤드기술이 HDD 고용량화를 이끄는 절대요인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데이터를 읽고 쓰는(리드 라이트) 자기헤드 관련기술은 좁게는 HDD, 넓게는 PC산업을 좌우할만한 핵심기술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자기저항(MR)헤드.
기존의 자기유도(Magneticinductance)원리를 이용하는 보편적인 박막(thinfilm)헤드와 달리 MR헤드는 자기저항(magneticresistance)의 원리를 핵심소자인 슬라이더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두 방식은 무엇보다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는곧 미디어의 밀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기존 헤드가미디어의 트랙(길) 위를 나는 「헬기」라면 MR헤드는 「전투기」에 해당한다고 비유한다.
때문에 기존 헤드가 마이크로에서 나노를 거쳐 다시 피코사이즈로 아무리초소형화된다 해도 기가급 HDD에서 서서히 한계를 갖고 있는 반면 MR헤드는 가격은 비싸지만 오히려 기가급 이상부터 위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세계 유력 자기헤드 관련 리서치업체들은 MIG·컴포지트·모노등 기존 제품들과 현재 시장 주력제품인 자기유도타입 박막헤드가 94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반면 94년부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MR헤드는 매년 두배 이상씩 성장, 헤드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덕택에 95년 기준으로 세계 마그네틱헤드시장에서 절대강세(72.5%)를보였던 자기유도 방식의 박막헤드는 98년엔 43.7%로 점유율이 낮아질 전망이며 95년 13.8%의 비중을 보였던 MR헤드는 52.4%로 급신장, 전세가 완전히역전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MR헤드의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세계 HDD 및 자기헤드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MR헤드의 기초 원자재인 웨이퍼와 1차 가공품인 슬라이더는 물론 헤드 조립 가공에 이르기까지 일관생산에 착수한 IBM·후지쯔·TDK를 비롯, 시게이트·리드라이트·?
국내서도 최근 후지쯔와 전략적제휴를 맺고 월 75만개 수준으로 MR헤드양산에 나선 태일정밀을 비롯, HDD시장을 놓고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를예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맥스터)가 직간접적으로 MR헤드 기술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MR헤드의 핵심소재인 웨이퍼 성장 및 가공기술을 IBM·후지쯔등 일부업체가 독점하고 있는데다 양산투자에만도 반도체에 버금가는 초대형투자가 요구된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HDD 및 PC마케팅력이 떨어진다는 점 등이 국내업체들에게 선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