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상의 끝, 서킷 보드의 중심 (42)

『이미 등록되어 계십니다. 1508호실이군요. 여기에 손바닥만 한번 대시면호텔 내의 모든 서비스를 룸에서 계산하실 수 있습니다.』

『메시지 온 것이 혹시 있소?』

『잠깐만요……. 여럿 있었는데 다 한 사람한테서 왔군요.』『죄송하지만 다 제게서 온 것 같군요.』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고비는 돌아서기도 전에 그녀의 향내에서 누구인지를 알아차린다. 레이디무라사키 향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아베 씨, 이렇게 뵙다니요!』

사토리의 멀티미디어 네트워크 부장인 유키 아베가 아까 입고 있던 서구식드레스를 벗고 우아한 기모노를 입은 채 서 있다.

전통 나막신에 흰색의 전통 양말을 신은 그녀의 모습은 약간 비둘기 같은느낌을 주는데 고비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

『제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한다.

『기억하고 말고요. 오히려 잊어버린다는 게 이상한 일이겠죠.』고비는 들고 있는 메시지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묻는다.

『전화를 세 번이나 하셨네요? 틀림없이 중요한 일인가 보군요. 무얼 도와드릴까요?』

약간 쑥스러운 듯 그녀는 작은 장어가죽 핸드백을 끌어안고는 바닥을 내려다본다.

『기분 나쁘시지 않기 바래요. 주제넘게 보일 거라는 것 압니다.』『아니, 무슨 말씀을요.』

고비가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한다.

『그게 무슨 일이든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겠죠.』

그리고는 시계를 본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이런 시간에 다 오셨겠습니까? 그, 그…….』갑자기 혀가 굳는 것 같다.

『여기서는 플럭스라고 부른답니다, 박사님.』

그녀가 그를 돕는다.

『이름이 있으면 쉽잖아요? 중간시간이나 이동, 혹은 변환이라고도 부르죠.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그녀가 그의 눈을 바라본다.

『처음에야 좀 특별하겠지요. 첫번째는 언제나…….』그녀는 몸을 으스스 떤다. 잠시 눈을 감더니 곧 밝은 미소를 띠며 다시 눈을 뜬다.

『다르잖아요?』

『그렇겠죠.』

고비가 입술을 오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