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일본의 전형을 합친 형태를 띠고 있다.
70년대초 미·일 선진업체들의 원가절감을 위한 조립생산 기지로 태동된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출발시기나 내용이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지만 발전과정은 일본에 가깝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3사 등 대기업들에 의해 주도돼온 반면 대만은정부산하의 반도체산업기구(ITRI)가 앞장서는 등 일본과 같은 정부중심의 육성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대만 반도체 산업의 분수령은 지난 85년 ITRI산하의 전자산업진흥연구기관(ERSO)이 내놓은 ASIC 중심의 성장안과 외국 컨설팅 업체들이 제안한 D램 중심의 성장안 가운데 대만정부가 前者를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설계·웨이퍼 가공생산(FAB)·조립 등으로분화돼 비교적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시황에 민감하지 않은 제품 전략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 중소기업 특유의 적응력을 극대화시켜 나갈수 있었다. 특히 디자인 중심의 사업전개로 축적된 설계 노하우는 외국 합작업체들의 선진기술을 조기에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대만은 무엇보다 반도체산업 초기부터 정부(행정원)가 주축이 돼 정부출연연구기관·대학·민간기업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分工합작 체제를 구축, 이들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반도체 저변 확대에 힘썼다.
이같은 분공협력 체제는 민간기업들의 R&D 비용부담을 크게 줄여 생산에만주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실제로 대만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5∼10%정도로 10∼15% 수준의 한국업체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ERSO 등 공공기관과 이공계 대학에서 R&D 역할을 분담, 수행하기때문에 개별 업체들은 적은 부담으로 효율적인 R&D 수행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사업에 본격 나서면서 대만의 반도체산업 육성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D램 사업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대만 반도체산업 발전의 근간을 이뤄온 분공협력 체제외에민간기업이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만은 종전방식에서 탈피해 업체간 컨소시엄을 유도하거나 선진업체들과 지분 참여를 통한 FAB 설립 및 OEM을 통한 자체기술 확보로 정책방향을 전환해 나가고 있다.
이같은 인식아래 대만이 실질적인 반도체 육성을 위해 내놓은 첫 작품은서브미크론 프로젝트이다. 지난 91년 정부와 민간업체가 공동으로 2억6천만달러를 조성해 0.5 FAB기술을 96년까지 일반기업에 전수시킨다는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계획은, 93년 16MD램을 처음 양산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대만전자연구소(ERSO)는 이 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TMSC社를 비롯, UMC·뱅가드 등 10개사로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이 프로젝트 완수를 통해 8인치·0.5 생산공정 기술을 확보, 한국에 버금가는 메모리 생산체제 구축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다.
대만 반도체산업 육성책의 또 하나의 핵은 국가과학위원회가 지원하고 있는 CIC기구. CIC는 각 대학에서 반도체 칩 제작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MPC서비스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
CIC는 우선 TMSC·UMC 등을 통해 양질의 파운더리 서비스를 하고 반도체설계의 핵심장비인 CAD 툴을 저가로 공급하며 각 개발단계에서 테스트를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통한 인력육성에 나서고 있다.
CIC에는 93년 이후 74명의 대학교수가 참가해 2백50여개의 칩을 시험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각종 디지털 통신용 VLSI를 설계 제작중이다.
〈김경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