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화를 가지고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일은 단시일 내에는 어렵다』는 것이 충무로 영화인들이 내리고 있는 평가다.
장이모와 첸 카이거의 작품이 미국에서 개봉되고, 성룡과 오우삼이 할리우드에서 지명도를 높이는 등 최근 중국계 영화가 부상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중국의 배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
여기에는 최소한 화교들만 관객으로 끌어들여도 영화흥행은 무난하다는 계산에다 중국시장 개방에 대한 기대심리까지 깔려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 이미 영화시장은 열려 있고 해외의 한국인 숫자도흥행을 보장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영화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영화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길은 합작영화를 통하거나 예술성높은 작품을 국제영화제에 출품, 수상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와 합작영화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인디영화(저예산 독립영화)의 1편 제작비가 4백만달러, 우리돈으로 32억원 정도다.
국내영화 최고의 제작비와 맞먹는다.
『비용이 막대하게 드는 메이저 영화사보다는 능력있는 독립프로덕션과 계약을 통해 공동제작에 나서거나 인프라구축이 잘 되어 있는 유럽지역의 영화업체들과 합작, 세계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업계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현재 미라신코리아가 멜 깁슨이 영국에 설립한 영화사 아이콘 프로덕션과 공동제작을 추진중이며, 대우도 동구권과 합작영화의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영화제작 및 해외시장 배급에 눈을 돌린 대기업들은 대부분국제영화제 입상쪽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영상사업단의 영화사업부 최건용 팀장은 『해외영화제 수상을 위해서는 작품성을 전제로 인맥과 로비 등의 측면지원까지 한데 어울어져야 하기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영화아카데미 졸업생이나 해외유학을 통해 체계적인 영화수업을 쌓은 신인감독들을 발굴, 영화제의 특성에맞는 작품을 제작하면 칸 등의 세계영화제에서 수상작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이와 함께 미국시장에 진출해 할리우드와 경쟁하기보다는 할리우드업체들이 소홀히 하고 있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마케팅전략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지적되고 있다.
올리브 커뮤니케이션의 윤명오 이사는 『극장상영을 무조건 우선시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영화권 및 매체별로 차별화해서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유럽은 TV판권이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이 케이블TV, 비디오,극장용영화의 순이기 때문에 극장보다는 매체를 이용한 시장공략을 전개하는 것이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동남아 지역의 경우 에로물로 극장과 비디오를 공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섬마을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아」 등이국내에서보다 오히려 더 히트해 속편 제작을 의뢰할 정도였다.
이같은 시장공략을 위해선 배급사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들어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영국 TV에 소개한 포르티시모는 유럽쪽 TV판권에 강한 네덜란드의 배급사로 흥행작보다는 아트필름으로 접근하는 것이유리하다는 것.
따라서 영화업계의 관계자들은 『각 배급사별 특성이라든가 우리영화 수출성공사례, 세계 영화권별 극장 및 TV판권료에 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같은 작업은 영화진흥공사 또는 대기업에서 맡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적인 것을 영화화하더라도 기획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세계배급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업계관계자는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은 대사를 적절하게 번역해줄 수 있는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사번역의 잘못으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작품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계의 제작여건, 해외배급망 확보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우리영화가 세계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급한 기대보다 정부차원의 대규모 지원과 인력양성, 영화 마케팅과 수출전략에 대한 체계적 연구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