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부품·소재산업 적극 키워야

柳國相 현대전자 마케팅담당이사

지난해 가을 우리 회사의 협력업체 사장들과 경주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계속되는 회의와 강의 등 딱딱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하루는 인근의 산업현장인 모 제철소를 방문했다.

거대한 규모의 시설과 자동화된 생산공정을 안내하는 제철소 직원은 국가기간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과 친절함을 보여 주었다. 공장견학 도중 특히열간압연 공정은 모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불과 2분여 만에 큼지막한핫코일이 자태를 자랑하며 생산라인을 빠져나오는 모습에 모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때 어느 프레스 부품업체 사장 한 분이 탄식조로 불평을 늘어 놓았다.

『저렇게 많이 생산되는 철판들이 다 어디가고 시중에는 품귀로 웃돈까지 얹어주고 사야 되는가.』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이 말에 공감하듯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는 이 때문에 현금으로 많은 양의 철판을 사다놓고 부도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들어 부품·소재산업에도 M&A나 특허생산방식, 전략적 제휴 등과 같은방법으로 자금력이 있는 업체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부품·소재업체들의 상당수는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부품·소재산업에 이웃 일본 등 선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한 업체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 전자산업의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들의 경쟁력이 우리 제품과 나아가서 국가경쟁력에 큰 영향을 준다는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무역자유화 분위기를타고 많은 가전제품·섬유제품·식품류 등이 대만·홍콩·중국 등지에서 수입되고 이중에는 소위 첨단산업이라 일컫는 컴퓨터 등의 기본부품도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 행위에 별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름길에 익숙해진 우리의 습성이 우리 산업의 한 부분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지금도 수입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적지않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도 물론 적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도 생산기술과 소재개발 및 시장성의 한계가 있으며 수입대체로 기대되는 「비용절감」이라는 대전제가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심을 하기도 어려운 일을 몇 년씩이나 적자를 감내해 가면서 추진할 수 있는중소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 생산기술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자타가 인정을 해주지만 생산수단인 반도체장비와 부품·원자재를 대부분 일본과 미국에 의존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 반도체업계의 아킬레스腱이기도 하다.

지금은 개발·생산 및 마케팅과 관련한 막대한 투자부담 문제로 인해 국제적인 분업과 협력이 활기를 띠고 있고 이같은 상호의존적인 경제활동이 바람작한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협력체제는 어느 일방의 이익보전을 위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취약점을 안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이 높아가는 주위 환경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이는 또한 오직 경제인의 몫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