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씨클로

씨클로(Cyclo)는 자전거 앞에 안락의자를 장치한 자전거식 인력거이다. 동남아를 여행해본 사람이면 택시요금보다 싸게 대중교통 수단으로 씨클로가이용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씨클로 운전수는 택시 기사보다 궁색스러운 도시 빈민이기 마련이다. 마치 우리의 개화기 무렵에 한양의 인력거꾼들이 그랬듯이.

트란 안 홍 감독의 <씨클로>는 베트남의 호치민 시(구 사이공)에서 씨클로를 몰아 가게를 꾸려가던 한 소년의 집안에 앵글을 맞추었다.이 소년(트반록 분)의 아버지는 씨클로를 끌다가 트럭에 치인다.아버지 대신고달픈 씨클로꾼으로 소년이 나섰는데, 깡패들에게 씨클로를 강탈당하고 만다.일수를 찍는 조건으로 대여받은 씨클로를 잃어버린 소년은 시인(양조위분)이 이끄는갱단의 일원이 된다. 마약운반, 불법태업, 폭력해결사, 보복성 방화등 범죄의 늪 속에 깊이 빠져들면서 소년은 순수만 버리면 달콤한 열매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공산혁명의 이념적 순결성을 상실하고 다시 자본주의체제로 개방되어 가는 베트남 사회의 이면이 소년으로 압축된 셈이다.

소년의 누이(트란 누엔케 분)는 시인의 연인이지만,그들의 사랑은 물젖은석탄처럼 발화하지 못한다.갱이 되어버린 시인, 시인의 알선으로 매춘에 나서는 연인,그 연인이 순결을 잃자 가책을 느끼고 불 속에 뛰어들어죽는 시인의 절망적인 사랑법이 또 하나의 비극적 축을 이룬다.

<...제기랄 내가 여기서 무얼 해야 된단 말이야 / 난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아 / 상처받는 것은 두렵지 않아 / 나 스스로를 제어하고싶어...>

이 영화주제곡에 암시되었듯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자유보다는 생존이,순수보다는 상실이 주된 정조를 이루고 있는 베트남 젊은이들의 오늘을 소년의누이와 시인은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씨클로>는 베트남의 뒷골목과 버려진 삶을 다루면서도 영화 문법이 지극히 밝고 환상적이다.일찌기 <그린 파파야의 향기>로 색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바 있는 트란 감독이 그 스탭을 재가동해 다시한번 마법의 파레트를 휘두른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비참함, 불결함,빈민가의 아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변용된 이미지로 포착해낸감독의 눈이다.

보트 피플 출신으로 34세의 베트남계 프랑스인인 트란은 세계 영화매니아들이 눈여겨 보아야할 작가정신이 탁월한 감독임에 분명하다.

<박상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