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부루나이를 거쳐 필리핀에 이르는 동남아국가들은 다양한 민족·종교·언어·문화가 혼재하는 독특한 지역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깝게는 싱가포르, 멀게는 동쪽의 한국과 일본을 거울삼아경제발전을 이루자는 분명한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EU(유럽연합)·NAFTA(북미자유무역연합)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ASEAN(동남아국가연합)이란 경제블럭이 태동한 것도 이같은 공감대에서 비롯됐다. 아세안은 조만간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이 가입, 총 9개국으로 회원국을 늘려 오는 2000년까지 역내 관세 0~5%대의 단일시장을 창출할 계획이다.
아세안 각국은 이를 위해 역내간 투자 및 교역을 확대하고 역외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실현하고 있다. 더욱이이들은 석유·천연가스·목재 등 천연자원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첨단 전자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경제블럭에 대응하는 한편 저임금을 활용한다는 전략과 맞물려 이 지역이 중국·중남미 등과 함께 세계 전자생산의 축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주요 백색가전은 물론 OA기기·정보통신기기에이르기까지 아세안의 전자제품 생산은 급증하고 있고, 이같은 추세는 금세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역사는 짧지만 이같은 전자기기산업의 급신장으로 기초 부품인 아세안의PCB산업은 한국·대만·중국 등 다른 아시아국가들 못지않은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대만·홍콩 등과 달리 아세안국가들은세트 자체가 외국투자기업에 의해서 인의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PCB산업 역시 일본·독일 등 외국업체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의 아세안 진출은 매우 적극적이고 다방면에서 시도되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은 각각 말레이시아에 생산기반을 두고 있는 스미토모·히타치 등 원판(CCL)업체들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의 PCB업체인 CMK를 비롯, 히타치케미컬·쿄사 등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의 PCB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아세안의 희망(?)인 싱가포르가 이 지역 전체 생산량의 45%정도를 소화할 정도로 아세안 PCB산업의 고속성장을 이끌고 있다. 싱가포르에는 현재 CMK·히타치 등 일본업체와 펜텍스·데구사·KECS 등 독일계업체, 그리고 PNE·그로리아·알타·굴텍 등 자국업체를 포함한 43개업체가 PCB를 생산중이며 생산품목도 6~8층의 다층기판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영국BPA의 최근 PCB시장보고서에 따르면 ROA(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지역에서 싱가포르의 PCB생산량은 대만(40%)·한국(24%)·홍콩(21%)에 이어 4위(15%)권이며 다층기판(MLB)과 연성PCB생산급증에 힘입어 오는 99년까지 한국과 대만엔 다소 못미치지만 연평균 8.3% 대의 높은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관측됐다.
안정적인 성장반열에 오른 싱가포르에 비하면 걸음마단계지만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등 아세안 후발국들의 PCB산업도 잠재력은 막강하다. 우선 「비젼2020」이란 경제부흥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는월 20만~30만장의 단면PCB 생산능력을 확보한 일본 CMK와 NEC 주도아래 MCI·GG써키트·야치·AE·IEM 등 28개 PCB업체가 단면PCB를 시작으로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등 PCB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있다.
이밖에 주로 일본업체들의 직간접적인 투자로 CMK·리포교사·스쿠마·셀리비트 등 총 8개 업체가 설립돼 단면PCB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PCB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비롯, 한국 최대의 PCB업체인 대덕전자가 본격 투자에 나선 필리핀 등 아세안 후발국들의 PCB산업도 유망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임금을 활용한 해외생산거점으로서 뿐만아니라 거대 시장으로서의 아세안의 가치는 높게 평가된다』면서 『외국 세트 및 부품업체들의 적극적인 진출과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의 경제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지역 PCB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어느 곳 못지않게 크다』고 진단한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