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이 발전하면 부품산업이 발전하게 마련이다. 특히 세트업계의 부품구매서열 1호인데다 전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반도체에 이어 보통 두번째 수준인 PCB는 더욱 그렇다. 아시아PCB산업이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되는 것도 바로 세계 전자업체들의 눈이 아시아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 확보와 아시아시장 교두보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은 아시아에 경쟁적으로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인건비가크게 상승, 현지생산의 장점이 줄어든 한국 등에선 이들의 이탈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으나 이전지는 대부분 저임금국인 아시아 후발국이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아시아, 정확히 말해 ROA(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지역의 PCB산업은 세계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큰 폭의 성장을 계속할 전망이다. 영국BPA와 미국IPC·NTI 등 유력 PCB시장조사기관들은 각각의수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ROA지역의 PCB산업이 오는 2000년까지 연평균 8%대의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국가들의 PCB산업이 2000년까지 모두 고성장을 예약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PCB산업에서도 「脫아시아」를 실현한 일본만해도 민생용 전자산업의 붕괴로 단면과 양면PCB산업이 몰락한 미국의 전철을 밟아 90년대 초부터 심한 구조조정기를 겪으며 생산량도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일본은 최근들어 휴대형 정보통신기기용 고밀도 초박판PCB와 BGA·COB·MCM 등 반도체 패키지용 특수 기판, 통신장비용 고다층PCB,연성 및 연경성 혼합(리지드플렉시블)PCB 등 고부가 다층기판(MLB)에 대한 집중투자로 금액면에선 다소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으나 전반적인 PCB산업은 계속 정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PCB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위축현상은 한국과 대만이 우선적으로답습할 것으로 보이며 이같은 증세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유력 PCB시장조사기관들은 한국과 대만의 PCB산업에 대한 장미빛 보고서를 속속 내놓고 있으나 적지않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전방산업인 자국 세트산업의 구조조정과 가격을 무기로한 동남아 후발 PCB생산국들의 게센 도전.
한국은 특히 수 년전부터 대형 가전업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전자기기의 해외생산 가속화로 단면PCB를 중심으로 절대 수요가 갈수록감소될 전망이며 국제경쟁에 있어서도 저급제품은 동남아, 고급제품은 일본등 양쪽으로 공격을 받아 나라 안팍의 경기호조 전망에도 불구하고 불길한조짐이 일고 있다.
대만 역시 컴퓨터 및 주변기기산업에서의 초강세를 바탕으로 그동안 PCB산업이 고성장을 지속해왔고, 앞으로도 10%에 가까운 고성장이 기대되고 있지만 다양한 시장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지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대만은 중국과의 잦은 마찰과 정국불안으로 미국의 대형 수요업체들이 속속 이탈, 전망이 결코 밝은 편은 아니다.
결국 아시아PCB산업의 중심은 이제 일본-한국-대만을 거쳐 중국과 아세안으로 서서히 옮겨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특히 적극적인 전자산업 중흥전략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홍콩 합병과 일본·대만·유럽 등 해외업체들의 대거 진출로 PCB 및 전후방산업이 모두 새로운 전기를맞으며 아시아PCB산업의 「속도 조정자」로 역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아세안의 PCB산업은 아직 발아기지만 안정된 정국운영을 통한 정부차원의 과감한 전자산업에 대한 지원과 PCB산업 성패의 관건인 양질의 노동력,적극적인 외국PCB 및 원판업체 유치, 아세안이란 경제블럭의 입김강화 등이 맞아떨어져 아시아PCB산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PCB업체들도 전반적인 아시아PCB산업의 구조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 더이상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인 해외투자전략과 해외시장개척에 나설 때』라며 『자국내 위기상황을 재빨리 파악, 동남아현지진출 및 시장개척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일본을 거울삼아야 한다』고지적했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