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호 (美남가주대 교환교수)
미국의 미디어 및 정보통신 산업계는 지금 한창 들떠 있다.
지난 2월에 클린턴 정부가 획기적으로 통과시킨 새 통신법에 따르면 십수년에 걸쳐 논란을 빚어왔던 정보사업자간의 사업영역별 규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전화사업자와 케이블방송의 사업분야를 각기 제한하지 않고 상호겸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극도의 경쟁구조 때문에 틈새시장만을 찾아 정부의 규제한도내에서 사업확장을 벌여 왔던 정보산업체들이 비교적 넉넉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필요하다면 매수·매입·합병 등을 자유롭게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개정법의 통과를 예견했다는 듯이 법령이 발휘되자마자 미국 중서부지역의전화사업자 유에스웨스트는 미국에서 세번째 규모의 케이블TV 복수사업자 인터컨티넨탈 케이블을 1백억달러 정도로 매입하였다. 또 동부지역의 전화사업자 벨애틀랜틱도 동북부지역을 관할하던 나이넥스 전화사와 5백20억달러에이르는 기업합병을 체결했다. 이는 AT&T 다음으로 규모가 큰 종합통신기업의새로운 탄생이다.
앞으로 유에스웨스트나 벨애틀랜틱 외에도 전화사업자와 같은 유선계인 케이블방송사들의 기업합병은 날로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두 분야뿐만 아니라컴퓨터업계도 떠들썩하다. 앞으로 멀티미디어 시장에서 승부를 가르려면 통신과 방송 그리고 컴퓨터의 상호 협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형 통신업체나 컴퓨터업체는 관련된 정보산업분야를 포진하기 위해서 심각한 물밑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 기업합병이나 공동투자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성사되는 것 같지만 새로운 차원의 경쟁구도로 치닫는 기업경쟁으로부터 비롯된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서 타기업의 매수를 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구도는 해외시장의 잠식을 위한 목적도 포함한다. 내면적으로 개정 통신법의 저의도 이 분야에서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목적이 없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정보산업 형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정부의 관련 행정조정과 관리법규는 일관적이고 합리적인가. 산업계는 건실한 정보분야의기반구조를 위해 투자하고 연구하는 소명감 지닌 기업활동을 이끌어 나가고있는가. 아마도 이러한 의문에 대해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응답할 소지가 없는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산업과 제도 측면의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는 협업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상황에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기초기술의 확립부터 인력배양에까지 토대를 닦는 경영이 가시화 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사냥의 형태를 보이는 그대로 흉내내거나 부러워하는 기업이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기업상태는 이미 기초적인 기반을 닦아놓고 그들 나름대로 경쟁의 역학구조에서 발생하는 기업구조의 변화이다.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 기초도 없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기업 수준에서상품화와 판매량에 몰입한 기업적 결탁관계에 치우치는 경향이 농후하다. 한마디로 정보분야의 전문성이 너무 취약하다. 이대로라면 선진국의 의존도만높일 여지가 많다. 최근에 미국 정보통신계의 기업구조가 왜 변하고 어떻게그 변화가 진행되는지를 신중히 분석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