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21);도약기 (7)

충북도청 행정정보시스템 시범사업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망「공안망 등 5대 국가기간 전산망의 틀이 완벽하게 짜여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인 87년을 전후해서 제정된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한다.

이 법령에 따라 86년 5월 한국통신진흥(자금지원),87년 1월 한국전산원(전산망 감리및 표준)등 추진체계가 출범하게 된다. 또 한국데이타통신(행정전산망),금융결제관리원(금융전산망),시스템공학센터(교육연구전산망)등 전담사업자도 지정이 된다.

5대 기간전산망 가운데 정부가 최대 역점을 둔 부문은 두말할 나위 없이규모가 가장 컷던 행정전산망이다. 86년 총무처가 발표한 행정전산망의 목표및 추진전략은 「작은 정부 구현」과 「선진 경제사회 실현」이었다.

이가운데 특히 「작은정부의 구현」은 공공기관에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목적과 방법을 그대로 표현해준 말이라는 점에서 사회 각계로 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정치적 긴장감으로 팽배해 있던 당시 5공화국 정부도 정권 차원의 치적 사업으로 행정전산망 등의 추진에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가지사회적 여건으로 시들해졌지만 한때는 한강 治水사업 등과 함께 행정전산망기틀 마련을 5공화국의 3대 치적으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 컴퓨터 역사를 좀더 멀리, 80년대에서 7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5공화국이 행정전산망 기틀을 마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성급한 평가였음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오히려 5공화국이 「작은정부의 구현」시기를 최소한 5년정도 늪췄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작은 정부의 구현」개념과 같은 입장에서 행정전산화 사업 추진에 나선 것은 4공화국 말기인 78년 부터이다. 이때 벌써 정부는 경제기획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공동으로 충청북도와 산하 시군을 행정전산화시범 道및 시범市郡으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통합 기간망 구축에 나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시범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78년 2월 총무처가 확정발표한 제1차 행정전산화 기본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제1차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은 정부가 78년부터 87년까지 10년 동안에 걸쳐5년단위로 전국을 단일 정보권으로 하는 [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때 확정된 1차계획에는 78년부터 82년까지 5년동안 32개 정부기관의 99종에 이르는 중요 업무를 전산화 한다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주요 골자는 시도 단위로 컴퓨터 공동이용을 위한 부분 전산통신망을구성하며 지방행정업무의 전산화를 위해서는 특히 각 시도에 전산센터를 설치한다는 것 등이었다.뿐만아니라 공용 행정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광범위한 수요조사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99개 중요 업무는 경제발전·국방 및 안전보장·치안·행정능률화 및 대민봉사 향상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예산관리·세금징수·주민등록관리·공안정보관리·취업알선 업무 등이 우선 순위로 돼 있었다.

2차 5개년 계획은 1차계획에서 기간단위로 개발된 업무의 계열별 통합,군단위까지 연결되는 전국적인 전산통신망 구축,분야별 행정자료의 단계적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이 골자였다. 물론 2차계획은 1차계획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2차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가 전국을 단일 정보권으로 묶는 대단위 행정정보시스템의 구축이었음은 물론이다.

총무처의 제1차 행전전산화 기본 계획 발표에 앞서 이같은 행정정보시스템구축 계획을 주도한 곳은 놀랍게도 예산업무를 담당했던 경제기획원 이었다.

당시 기획원 예산국은 행정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이 장기적으로는 정부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 주요기관의 전산화는 KIST·금융단전자계산본부(KBCC)·중앙전자계산소(NCC) 등 연구소나 공공 전산센터를 활용하는 형태를 취해오고 있었다.

이가운데 67년 설립된 KIST는 당시 주요 정부기관·교육기관·민간기업의전산업무를 도맡다시피했고 69년 출범한 KBCC는 대부분의 시중은행 전산업무처리를 담당했다. 또 70년 발족된 NCC는 정부부처의 행정업무 전산처리를 일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저가 고성능의 미니컴퓨터 기종이 등장하고 민간기업의 전산시스템 도입이 급증하자,정부기관에서도 독자기종 도입을 선호했고 기획원 예산국은 이 때문에 예산편성 때마다 부처 전산시스템도입 에산배정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때 경제기획원이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과학기술처 소속이던 NCC를총무처로 이관시켜 정부전자계산소(GCC)로 개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천에 옮겨지기는 했지만 GCC의 전산시스템 용량이 턱없이 부족했고정부기관들의 여전한 독자기종 도입 선호로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예산 감축을 위해 기획원이 두번째로 입안해 낸 것은 「정부행정의 효율화」를 위해 기간망을 새로 구축하고 통합 전산 업무를 개발,부처간 공동이용을 추진하는 일이었다.

이 두번째 아이디어를 공문서화 한 것이 바로 총무처의 행정전산화기본 계획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획원의 첫번째 아이디어가 전산 예산 감축 그자체에 촛점이 주어져 있었다면 두번째 아이디어에서는 전산 예산은 그대로 집행하되 전산화 결과로 나타나게 될 행정비용 절감, 즉 장기적 안목의 예산 절감효과를 노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부처의 통합 전산화 계획은 막대한예산이 소요되는 국가적 대사였음은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총무처의 1차 5개년 계획이 발표되자,기획원은 행정정보시스템의 본격 구축에 앞서 78년 7월 시행착오와 예산상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시범 사업에먼저 착수하게 된다. 시범사업은 경험이 전무한 행정정보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무슨 기술이 요구되는가,어떤 제도적 지원이 따라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연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시범사업 수행자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전산시스템과 개발기술을 자랑하던KIST 전산개발센터(구 전자계산실)가 선정됐다. 시범사업 대상지역이 하필충청북도로 정해진 것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시범 사업에 직접 참여했던Q씨의 회고.

『당시 고급 내무관료 가운데 행정전산화에 가장 열성을 보였던 이는 충북지사인 정종택씨(현 환경부 장관)였고 그와 가장 절친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이가 바로 기획원 예산국장 강경식씨 (현 신한국당 의원)였습니다. 시범사업 성패에 자신의 진로가 걸려 있다고 판단한 강경식씨가 정종택이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끌어 들인 셈이죠』

이때 기록을 보면 기획원 예산국과 시범사업자인 KIST 전산개발센터 측은연구책임자 안문석(현 고대교수),실무 책임자 신동필(현 과학원 교수) 등을비롯 연구원 8명, 위촉연구원 9명, 자문그룹 8명등 30명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팀을 구성 하여 78년 7월 청주로 내려 보냈다.다시 Q씨의 회고.

『처음에는 신동필 팀장 지휘하에 청주 시내에 아파트 2채를 전세내고 1년이상 동안 합숙을 했죠. 주된 작업 장소는 충북도청이었는데 그곳의 방한칸을 마련해서 전산실을 만들고 산하 시군에 원격 단말기를 직접 설치했습니다. 특히 음성군의 경우는 면 단위 까지 단말기를 설치,시범 사업에 완벽을기하려고 했습니다』

충북도청과 산하 시군을 연걸하는 행정정보시스템 시범 사업은 80년 초까지 계속됐다. 79년 10.26사태 와중에서도 사업은 지속됐고 80년 봄 까지 최규하 대통령이 주재하는 월례 경제동향보고회에 그 추진과정이 정기적으로보고 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 9월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기획원 예산국장과 충북지사가 바뀌자, 정부당국의 행정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대한 열의는 급격하게 식어갔다.

81년부터는 실무부처인 내무부의 사업기피로 시범사업은 아예 종지부를 찍고말았다.

시범사업의 중단은 결국 제1차 행정전산화 기본계획의 종료를 뜻했다. 물론 문서상으로 82년 말 제2차 행정전산화기본계획이 마련돼 발표되기는 했지만 연속 사업으로서의 의미는 크게 축소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업 계획을추진할 당시의 정권이 몰락해 있는 상황이었고 추진 주체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당연히 그 목표나 추진 방법도 변형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81년이후 정부의 행정전산화 추진사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비전이나 입장을 견지한 추진 주체가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편오늘날에도 활동중인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의 5대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이 수면위로 부상한 시기는 85년경 부터이다.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의 발족과 함께 마련된 5대 국가기간 전산망계획은 그러나 78년 경제기획원이 예산 절감을 위해 기간망을 구축하고 통합업무를 개발,부처간 공동이용을 실현하겠다는 행정보시스템 구축 계획을 확대 보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충북 도청 시범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얻었던 기술적 행정적 경험이 그대로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특히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부처 차관급을 위원으로 하는 범부처 협의회 성격으로 구성된 직접적인 계기는 충북도청 시범사업에서 얻은 귀중한 행정적 경험이었다. 충북도청 행정정보시스템 시범사업 추진과정에서 관련 부처 사이의 행정적 조정문제로 실무책임자였던 신동필이 막판에 교체되는 된것등의 우여곡절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됐던 것이다.

< 서현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