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컴퓨터 해킹은 범죄행위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청·장년 가운데는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수박을 몰래 따다 먹는 「서리」의 경험을 한번쯤 추억거리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성숙해 가면서 서리는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쟁회사의 영업비밀이나 기술을 빼내는 스파이 활동이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와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컴퓨터 해킹사건이 발생,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가 철퇴를 가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떠들썩한 적이있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컴퓨터 실력을 가진 대학생 4명이 검거되고 그 중2명이 구속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는 각계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세대에게 컴퓨터시대의 새 윤리를 심어주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그들에 대한형사처벌은 자료파괴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4명의 해커를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해커를 동정하고 나선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대학 동아리 사이의 경쟁에서 비롯된 「일종의 해프닝」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구속까지 한 것은 너무 지나쳤다는 주장을 폈다.

한국 최고의 두뇌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전문가들의 순간적인 판단 실수를안타까워하면서 해커들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밝은 세계로 끌어내는 사회적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들 중에는 젊은 해커들을 컴퓨터시대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그들을 모셔가려는 경쟁이 대기업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언론매체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나 애플컴퓨터의 스테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도 초창기 해커들이었으며 이런 「두뇌들의 해킹전쟁」에서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기술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과대 포장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필자는 이러한 감상적인 관용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그들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며 동시에 그들이 치기어린 경쟁심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서리할 때에도 지켰던 규범을 어겼다. 분명히 용서받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설사 해킹이 발각되는 한이 있더라도 시스템전체를 못쓰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료검색 방식을 변경시켰을 경우에도 이를 원상회복시킬 수 있는길을 열어 놓아야만 했고 비밀번호를 바꿨을 경우에도 바뀐 번호를 나중에라도 알려주는 최소한의 배려를 했어야 했다.

해킹 자체야 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본적이고최소한의 배려가 없을 경우 그것은 이미 서리와 같은 익살스런 장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따라서 해커들을 영웅시한다거나 관용해야 한다는 주장은설득력이 없다. 또 그런 해커들을 대기업들이 앞다퉈 모셔가려 한다는 것도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보는 정보화시대의 핵심자산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정보 자체가 지닌 값어치의 크고 작음에 불문하고 정보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수박과 닭을 서리할 때에도 수박밭 전체를 짓밟는 일이 없었고, 닭장을 부수거나 닭에게 약을 먹여 죽게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는점을 상기해 보면 이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崔石植 과학기술처 기술인력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