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축제

<축제>

우리 속담에 「치사랑이 내리사랑을 못당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 섬기기를 지극 정성으로 하는 효심이라 할지라도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에비하면 옹색하기 이를 데 없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임권택 감독의 풍속극 <축제>는 토장 냄새가 짙게 배인 한국적 내리사랑과 이에 화답하려는 치사랑과의 소박한 얼크러짐을 그려내고 있다. 고향집앞마당의 감나무는 봄이면 새 순이 돋아나 감꽃이 피고 가을이면 발갛게 익은 과실을 주고 잎이 진다. 떨어진 잎은 썩어 자양이 되며 그 자양을 빨아올려 다음 해 다시 새 잎이 돋는다. 이러한 생명의 순환 논리를 건조한 사물의법칙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만나서 스며들고 스며들면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연기론(緣起論)의 그물로 건져올린 작가적 관점이이 영화의 압권이다.

그래서 영화는 내리사랑 세대와 치사랑 세대의 양극단에 87세의 치매 증세가 심한 할머니(한은진 분)와 11살의 착하고 꿈 많은 소녀 은지를배치한다.

할머니는 소멸과 죽음에 닿아 있고 소녀는 생성과 신생의 길로들어선다. 두세계의 중간에 할머니의 아들인 40세의 소설가(안성기 분), 큰 며느리(박승태 분), 소설가의 이복조카딸 용순(오정해 분)이 삶의 쓰고 단 역정의 소용돌이를 빚는다. 이 소용돌이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끝없이 동심원을 그리며가족이라는 그루터기의 끈질김, 운명적인 연대감, 끈끈한 정서 공동체로서의이웃과 마을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시골에 있는 노모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귀향하는 소설가로부터 비롯된다. 한평생 자식과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고인이지만,장례식에 모인 가족과 친척들은 저마다의 이기심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지만 고향의 삶과는 괴리되어 살았던 소설가,주정뱅이 남편과 사별하고 고인과 함께 고향에서 그악스레 살아온 형수,13년전 집안의돈을 훔쳐 가출했다가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찾아온 용순 등이과거의 상처를드러내며 서로를 할퀸다. 그러나 남도 해안지방 특유의 장례 절차를 거치면서 모든 갈등 관계가 용서와 이해의 마당으로 바뀌어 간다. 은지의 깨끗한동심과 철저히 표백된 할머니의 마음이 섞여 엮어내는순진무구한 동화적 세계 속에서 감정의 응어리들이 녹아나는 씻김의 과정이설득력있게 그려져 있다.

<박상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