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하이테크제품의 "거품" 가격

서양의 신화에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침대에 눕혀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부분을 자르고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 죽인다는 괴물의 이야기가 있다.

컴퓨터와 중앙처리장치(CPU)·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모뎀 등 관련 부품 및 주변장치 시장을 보면 「경쟁」이라는 괴물이 「가격」이라는 침대를만들어 놓고 참여업체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PC나 모뎀을 비롯한 주변기기들의 성능과 용량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10배가 넘는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정작 이들 기기의 값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물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초기시장에서 선발업체가 거품이 곁들여진 엄청난 이익을 거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테크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선발업체는 앞선 기술을 무기로 초기에 가격이 비쌀 때 시장을 장악해 높은 이윤을남겨 투자여력을 확보하고 후발업체들의 추격이 가시화될 무렵이면 단계적이고 공격적인 가격인하를 통해 후발경쟁업체들의 여력을 빈곤하게 만들어 지위도전을 원천 봉쇄한다.

PC용 CPU처럼 선발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큰 제품의 경우는 선·후발업체간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기가 쉽다. 반면 기술 및 시장경쟁력이 비슷한몇몇 업체들이 팽팽히 대결하고 있는 HDD나 모뎀 같은 경우는 선두그룹이 상호간 점유경쟁 및 후발그룹 견제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술발전과 가격을 이끌어가게 된다.

그동안 우리 전자업계는 가격경쟁이 제한적이고 리스크나 부가가치도 낮은가전이나 범용부품·소비성 전자제품 위주로 발달해왔다. 「권장소비자가」에 길들여진 우리 소비자들이 가격대가 다양하고 시장가격도 시시각각 변하는 컴퓨터 시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인 형태와도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