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지적 재산의 빈곤

최근 「사이버 스쿨(Cyber School)」을 준비하자고 말한바 있다. 그후이미 그같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인터넷 월드와이드웹 상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사 홍보용 홈페이지 수준이지만, 개중에는 양질의 정보와 깔끔한 화면구성, 아이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편리한 인터페이스 등으로 돋보이는 곳도 있다. 인터넷은 아니더라도국내 PC통신망을 통해 멀티미디어 교육방식을 사업화하려는 곳도 눈에 띄었다.

이미 온라인, 씨디롬, 서적, 비디오 등을 통한 지적 저작물의 멀티 디스트리뷰션이 전세계적으로 준비되고 있으며, 외국에서 사이버 스쿨이 구체화할날도 머지 않은 것같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인터넷 월드와이드웹에서 우리가 느끼는 속도상의 답답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때문에 우리의 준비를 무한정 미룰 수는 없지 않겠는가? 통신양식의 혁명적인 변화가 어느 순간에 다가올지 예측하긴 너무 어렵지만 우린 충분히 예감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적 측면에서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구리활자와 거북선을 만든 과학민족의 전통을 내세워 세계최초의 무슨무슨기술과 제품을 만들었다는 식의 자랑은 이제 사양하자. 사실 우리의 기술로인터넷을 추동한 것도 아니요, 윈도우 환경이든 유닉스 환경이든 이미 우리가 개발해낸 것이 아닌 바에야 어찌 우리가 미국의 「선수」들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약간의 자본투자로 해결될 수 있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예전부터 자주 사용해왔던 외국기업과의 기술협력, 수입대체 과정을 통해 무난히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며, 이미 세계화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속성상 자본들간의 협력과 투자를 내용으로 한 각종의 국제적 컨소시엄이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미국 굴지의 아동용 서적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와 독보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브라더번드사가 훌륭한 결합을 이뤄내어 아동용 CD롬 타이틀 분야에서 줄곧 수위를 달리는 제품을 내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소위 「책」과 「씨디롬」의 모범적 결합에 대해 수차례의 구상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전 국내의 아동서적 분야에서도 제법 잘 알려진 아동도서 출판사를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국내 대형 출판사들의 정말 우습지도 않은 횡포, 그때문에 뒤틀릴대로 뒤틀린 아동서적의 유통형태, 문화사업 측면이 강한 소규모 서점들의어려움과 그에 반비례해 더욱 강화되는 대형 서점 위주의 유통 형태···

사실 이런 상황에서 실력있는 작가와 그래픽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을게 당연하고, 그나마 배출된 인력들은 보다 안정적이고 현대적인 마켓의 손짓에 재래시장을 훌쩍 떠날 수 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올초에 한국 아동서적의 자존심인 보리출판사와 아동용 씨디롬 개발의 선구자인 푸른하늘사가 1년간의 공동기획개발을 통해 발표한 제품이 나름대로의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값지고 눈물나는 경험이라 하지 않을 수없다.

문제는 이런 고급의 인력들,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적, 지적 수준을 선도해가야할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계의 인력들이 충분히 성장할 수있는 구조가 너무 취약하고 즉흥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만 비대해진다는 데에있다. 우리네 역사가 그래왔고, 현재의 산업구조가 그렇고, 기업의 내부관행이 그렇고, 개인들의 심성이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아이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치자고 외쳐대더라도 학교엔 박물관을 잘못 찾은 선사시대 XT가 떡 버티고 있다. 펜티엄에 고속모뎀이 달려있는 소위 「잘 나가는」 학교의 어린이들은 인터넷에 들어가도 별로 볼 거리가 없다. 정작 그 볼거리를 만들어야할 사람들은 「돈 안되네」하는 소리를 들어가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밖에없는 처지이고, 게다가 컴맹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영어 조기교육으로 미국애들 뺨치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아이들이 한국과 전 세계의 문화, 철학, 사회, 예술, 교양에 대해 맹탕인 바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답답함을 풀어줄 이는 과연 누구인가? 지적재산에 대한 인식의 전환, 지적 재산의 창출에 필요한 구조의 마련, 그것을선도해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정보화 마인드 등 이런 명제들은 컴퓨터 소프트웨어기술의 빛나는 승리에 가려 숨죽이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이 진정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합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이건범 아리수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