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에폭시원판가격 인하 움직임..PCB업계 시큰둥

산업용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소재인 글라스에폭시 원판 공급가격 인하를 둘러싼 PCB업계와 원판업계간의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해 당사자들인 원판·PCB·동박 등 관련업체들이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명목상 이번 원판가격 인하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는 PCB업계다. 원판업체들의 차등인하방침에 따라 일단 업체별로 다소 차이는 있으나 6∼10%의 원판가 인하는 대략 2~4%대의 원가절감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PCB업계가 원판 가격인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직까지도 PCB시장이뚜렷한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인하폭도 지난해 2차 에폭시원판가격인상분(13~14%)에 다소 미치지 못함은 물론 가격인하율도 업체별로 차등적용돼 PCB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PCB업계의 반응이 냉담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머지않아있을 세트업체들의 가격압력. 세트업계가 단 2∼3%만 PCB구매가를 내려도 원판으로 따지면 10%대의 가격인상 효과를 가져오는데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추어 원판 등 핵심 원자재가격이 내려가면 곧바로 PCB공급가격 인하압력을 가하는 것이 세트업체들의 속성이라는 것. 실제로 일부 세트업체들은 원판가인하 움직임에 따라 벌써부터 유무형의 가격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만이 있기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두산전자·코오롱전자·한국카본 등 주요 에폭시원판 공급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PCB시장이 침체돼 수요가위축, 재고가 누적되고 있는 마당에 가격까지 내려간다면 94년부터 상승세를타고 있던 매출과 수익이 동시에 떨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원판업계는 『얀·동박·수지 등 현재의 원자재가격을 감안할 때 원판가격 인하요인이 별로 없다』며 『PCB업계가 세트업계의 가격압박을 원판업계쪽에만일방적으로 전가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라는 반응이다.

에폭시수지·동박·잉크 등 에폭시원판용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의반응 역시 좋을 수가 없다. 원판가격 인하의 불똥이 최종적으로 소재업체로떨어질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PCB나 원판업체들은 원가압력을전후방업계에 전가할 틈이라도 있지만 소재업체들은 비빌 언덕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재 에폭시원판 가격등락의 주 요인이 얀과 이의 1차 가공품인 글라스패브릭임에도 불구하고 원판업체들이 주로 국산화된 동박이나 수지쪽에 가격압력을 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일부 원판업체들로부터 『에폭시원판 가격인하 움직임에 맞춰 기초소재 가격이 인하돼야 한다』는 말이 자주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번 에폭시원판 가격인하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세트업체들일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지난해부터 PCB 구매가격 인하에 대한 유무형의 압력을 가해온 세트업체들로선 가격인하의 새로운 명분(?)이 추가된 셈이다. 여기에 PCB시장의 위축으로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질러 PCB업계의 경쟁을 유도, 인위적으로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호기까지 잡았다.

결론적으로 PCB 전후방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가격」의 열쇠를 쥐고있는 곳은 세트업체들이라는데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국내PCB 및 관련산업을 살찌우고 허물어지고 있는 가격질서를 바로세우기 위해선무엇보다 세트업체들의 인식전환이 가장 절실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있다.

PCB업계의 한 관계자는 『철저히 주문생산에 의존하는 PCB는 다른 부품과달리 세트업체들과의 수급구조가 종속관계로 유지되기 마련』이라며 『부품및 소재업체들의 원가구조를 감안, 제값 쳐주는 구매패턴 정착이 시급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