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20)

지적재산권 담보 금융대출

『「글」이란게 무엇입니까. 어디다 쓰는 것이죠?』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한글과컴퓨터가 금융기관에서 겪었던 창피스러운 에피소드다. 당시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은 인기 급상승중인 한글워드프로세서 「글」의 지적재산권을 담보로 기업자금 1억원을 대출받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갔다가 그것도 평직원한테 이같은 수모를 당했다.

이 사장은 지금도 그 당시 신용보증기금 직원이 글을 정말 몰랐을까 하는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이란 것이 금융기관에서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직원은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는것이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를 따져보자면 끝이 없을 터이지만 몇 손가락에 꼽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에 대한 마인드 부재다. 『지적재산권이 무슨 담보가 되느냐』며 나아가서는 『돈으로서 가치가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는 앞서 이찬진 사장의 경우처럼 담보물건 설정 때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는 빌딩이나 토지처럼 눈에 보이는 부동산 문서가 아닌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 증서 따위는 재활용 폐지 값도 쳐주지 않는다.

고급 기술인력과 지식경험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부동산 담보 없이 금융기관에서 기업 운전자금을 대출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담보설정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견은 이제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앞에서만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을 외쳐댈 뿐 관련 업체들에 대한 금융기관 대출관행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어떤 기업경영에서든 자금은 전쟁터에서의 실탄과 같다. 이 실탄은 원칙적으로 생산-유통-생산이라는 자가발전 과정의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자가발전해서 얻어진 실탄을 사용하기에 앞서금융기관에서 빌려온 실탄을 우선 사용하고 나중에 이를 갚는 메커니즘에 익숙해져 있다.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새로운 제품을 기획해서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데필요한 기간은 일반적으로 1년 정도가 소요된다. 기업규모가 크고 히트상품이 팔리는 중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신생기업이나 중소기업들에 1년은전혀 매출이 없는 기간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때의 기업 운전자금은 별수없이 금융기관에 의존해야 되는데 부동산 담보가 없는 소프트웨어업체들에 금융대출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자금대출 문제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가는한 조사결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전국 70개 소프트웨어업체들을 대상으로 기업경영과 자금관계에 대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업체들이 기업경영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자금부족(29%)을 꼽고 있다.〈그림1〉

소프트웨어업체들의 경쟁력저하 요인 항목에서도 자금조달의 어려움(28%)은 전문인력의 절대부족(29%)에 이어 근소한 차로 2위를 차지했다.〈그림2〉

정부가 소프트웨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우선 순위로 지목되고 있는 항목에서도 자금지원은 단연 1위(35%)로 꼽히고 있다.〈그림3〉 뿐만 아니라 정부가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가장 먼저 배려해야 될 수단(Promotion Area) 역시 자금 지원(42%)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림4〉

물론 소프트웨어업체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금융 대출이나 지원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업체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금융 대출이나 지원제도는 정보통신 진흥기금(정보통신부)·공업발전기금(통상산업부)·종소기업구조조정기금(중소기업청)·과학기술진흥기금(과학기술처)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대부분 하드웨어나 통신 또는부품 등 생산시설과 같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업체들이 주로 이용하고있는 실정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지난 3월 앞서 언급한 자금 문제와 결부해서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대답한 곳은 전체 70개 업체 가운데 29%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들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있다고 대답한 71%의 업체들이 이용하지 못했던 원인으로꼽은 것들이 의미심장 하다.

그 첫번째는 정부의 금융지원 제도의 담보설정 기준이 과다(34%)하고 자금용도가 처음부터 非소프트웨어(비 지적재산권) 부문에 한정돼 있으며(26%)기업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낮기 때문(25%)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림5>참조)

이같은 조사 결과는 적어도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는 정부의 금융 지원제도와 일반 금융기관의 담보 대출 방식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느끼고 있음을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관련 업체들은 정부 지원 제도나 일반 금융 지원제도 가운데 개선돼야할 사항으로는 금융 관계자들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인지도 부족(38%)과소프트웨어 기술(지적재산권)평가 능력의 부족(36%) 등이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있다.(<그림6>참조)

한편 일본에서는 이미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담보로 한금융기관의 융자가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있다.

일본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도입·시행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담보 융자 내역을 보면 우선 은행 내부적으로 독자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대상 기업의 소프트웨어부문 매출액을 예상하는 평가작업을 벌이고 있음을볼 수 있다. 이는 이 업체의 건실도 전망을 예측해보는 수단이 된다. 이어서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토대로 융자금액을 정하게 되는데 금액결정에는 이밖에도 소프트웨어 사용자(고객)리스트와 판매 매뉴얼에 대한 질권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여러가지 의무규정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융자금 대출 후에 담보로 설정된 지적재산권·특허권·질권에 대해 제3자의 무단복제나 도용을 막아야한다는 것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또 은행의 담보 대출 외에 지적재산권의 일부를 투자가에게 지분 형식으로 양도하고 제품이 개발되면 그 판매 이익을 지분비율로 양분하는제도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3차원 게임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벤처기업겐케트사의 경우 최근 개발 중인 3차원 가상현실게임 「사이버워크」의 지적재산권을 총 1억원에 몇몇 투자가들에게 양도하고 선금을 받아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겐케트사의 경우는 최근 국내에도 더러 도입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지난달 말 한글과컴퓨터가 한국산업은행을 비롯, 한국기술투자와 제일창업투자 등 창업투자회사로부터 20%의 주식 지분 매각 댓가로 모두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경우이다. 물론 한글과컴퓨터는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평가 보다는 이 회사가 갖는 기업적 이미지, 예컨데 국산소프트웨어 업계를 대표하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투자결정에 대한 보다 큰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정부의 금융지원 제도나 일반 금융기관의 담보 대출관행이 개선되지않고 있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업계는 최근 한국소프트웨어협회를 통해 지적재산권을 신용 담보로 설정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정부 측에 건의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마련된 건의안의 골자는 우선 정부가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평가 규범을 조속한 시일 내에 제정함으로써 자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핵심이 되는 평가기준 제정의 경우 독립된 기관으로 하여금관련 분야 연구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소프트웨어어의 소스코드저작권과 용역계약서 등과 같은 구체적인 분야에 대해서도 자산을 인정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의안은 이어서 (기술)신용보증기금 및 금융기관 등에 이 평가 규범과 자산기준의 도입 및 적용을 적극 권장하며 중소기업 등에 대한 신용담보 지급보증 기관으로 정부·민간공동 출연형식의 공제조합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는것도 주장하고 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