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5년 넘게 지속돼온 세계 반도체시장의 이상호황이 올해 들어 급기야마감된 느낌이다. 「만들면 팔리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D램의 위력 또한예전같지 않다. D램 가격 폭락세로 경기거품이 걷히자 당장 국내 수출전선에비상이 걸렸고 반도체 3사 또한 전에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쟁력 회복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산업이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최대위기라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또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항구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간 반도체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에대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시점에서 공장신·증설, 관세, 해외투자규제 등 국내 반도체산업 경쟁력 제고의 걸림돌이되고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방향을 수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
지난달 말 통상산업부에서는 긴급수출촉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반도체업체 사령탑은 물론 관계기관의 장들이 모두 모였다. D램 가격하락으로당초 계획보다 50억달러의 목표미달이 예상되는만큼 대책을 세워보자는 회의였다. 그러나 특별한 대안이 있을리 만무했다. 6월 초에 열린 두번째 회의도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출부진의 원인이 국제 D램 가격하락에 있는만큼 업체 차원에서의 대응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량조절을 위한 생산량 동결 내지는 감산이 업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그러나 사실 생산성 극대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 감산이나 생산동결은 뼈를 깎는 아픔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가 자발적으로 극약처방을동원해가며 경쟁력 제고에 앞장설 동안 수출촉진을 외쳐온 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삼성·현대의 미주투자를 놓고 첨단산업 공동화를 앞세워 자본자본 부담률을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막상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로 땅이 없어 공장을 짓지못하게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정규제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라고 덧붙인다. 업계의또 다른 관계자는 이날 회의의 성과라면 바로 그간 반도체업체들의 발목을잡아온 이같은 각종 규제법안들의 개선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다시 한번 공론화됐다는 점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관계당국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산부·건설교통부·환경부·재무부 등 유관부처간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른 이견조율 시간도 필요하다. 『반도체산업이 기술선도산업으로 산업 전후방에미치는 영향이 큰 국가전략적 산업으로 전폭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는 점에는인식을 같이 하지만 타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는 물론 자칫 대기업 특혜라는우려의 소지가 있어 항상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통산부 관계자)
그러나 종전과 같이 팔짱만 끼고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D램시장 탈환을 위한 일본의 맹추격이 가속화되고 있고 다크호스 대만의 시장참여도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타이밍 산업이다. 적기생산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개당 가격이 50달러를 호가했던 16MD램 초기시장에서 증명된 바 있다. 달리는 업계의 발목을 잡는 각종 행정규제를 개선해 업체들로 하여금 보다 빨리,멀리 뛸 수 있게 해주는 정책마련이 시급하다.』(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 부회장)
D램가격 급락이 가져온 악재가 한꺼번에 돌출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최근의반도체시장은 분명 우려할만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상당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시점이다.
〈김경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