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세계 반도체시장 추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10년간은 단기적인 경기하락을 감안하더라도 매년 평균 20∼30%의 생산능력 확대가 필요할 것으로업계는 보고 있다. 생산능력 확대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것도 무시할 수는없지만 기본적으로 증설 및 신설을 통한 생산능력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시장선점 효과가 뛰어난 차세대 제품 생산라인의 신설은 이제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가 2005년까지 향후 10년간 필요로 하는 공장부지는 기존부지의 약 2배 정도인 총 2백92만평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수도권 지역에서만 장비·재료 등 주변산업 소요부지를 포함해 약 2백12만평에달한다. 〈표참조〉
하지만 현실은 이를 허락치 않고 있다. 땅이 없기 때문이다. 업체마다 이른바 「5‘8조치」로 불리는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처분 조치에 따라 여유부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다. 남아있는 부지마저도 「수도권 정비계획법」 「공업배치법」 등 20여개의 각종 관계법령에 묶여 사실상 공장 신·증설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기흥공장은 성장관리권역으로 공장 신설은 아예 불가하고 기존공장의 25% 정도의 증설만 가능하다. 자연보전지역으로 묶여 있는 현대전자이천공장의 상황은 훨씬 나쁘다. 단지 최고 3백평 이하의 신·증설만 가능할뿐이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취약지대인 비메모리 반도체생산 참여를 앞두고 있는아남산업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장부지로 확정한 부천이 인구과밀억제지역으로 9백평 정도의 신·증설만이 허락되고 있기 때문이다.
D램시장에서 한국 추격에 나서고 있는 대만이 최근 수도인 타이베이에서 40분 거리에 대단위 첨단산업단지를 조성,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줘가며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정부의 공장 신·증설 억제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수출산업의 간판격인 반도체가 부지문제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이 서로 눈치만 보고 대안마련을 소홀히 한다면 닥칠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반도체 3사 전략기획실 관계자들)
특히 유관부처간 법 적용이 달라 한쪽 법에서는 허용한 것을 다른 부처의법에서는 제한하는, 상호모순된 운용을 하는 현행체제는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림은 물론 업계의 중·장기계획에 차질을 가져오는 주요인』이라며이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행정쇄신위가 주축이 돼 통상산업부·건설교통부·환경부·재무부 등 유관부처간 이견조율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분명 청신호다.
또한 통산부가 앞장서 물밑에서 추진중인 「권역별 반도체 공업지역 조성계획」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관련업계는 최근 당국의 빨라진 행보를 반도체산업의 심각성을 인식한 반증으로 받아들이고 향후 정책향방에 큰 기대를걸고 있다.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커다란 조치에 앞서 관계당국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업계가 무조건 수도권 지역의 공장 건립을 고집하기보다는 제품 특성상 반드시 수도권 인근에서 해야 할 사업을 선정하고이에 대해서는 당국도 앞장서 여건마련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기술노동집약적인 조립산업의 경우 수도권외에 온양·청주·구미·전남 광주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면 생산기술집약적 성격이 크고대규모 R&D시설과 연계성을 갖추어야 할 메모리나 설계기술집약적 산업으로고급인력 확보가 관건인 비메모리 생산라인은 모든 인프라시설을 고려할 때수도권 인근지역이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김경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