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레이 촬영장치를 개발하면서 태동한 국내 전자의료기기산업은 「선진국이먼저 개발해 사용중인 제품을 얼마만큼 빠른 시간 내에 국산화하느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개발보다는 모방에 주력하며 성장한 것이 바로 전자의료기기산업이기때문이다. 물론 선진국과의 시간·기술·환경·제도적 차이를 감안할 때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최근들어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의전자의료기기를 생산하거나 일부 기술에서 선진국을 앞선 것이 의외일 정도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관심을 모으며 선진국과 기술격차를 좁혀나가는 대표적인 전자의료기기는 영상진단장치. 지난해 선진국의 전매특허로만 여겨졌던컬러 초음파 영상진단기와 컴퓨터 단층촬영장치(CT)를 국산화한 데 이어 올하반기에는 국산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와 의료영상 저장전송장치(PACS)까지 시판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기술발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임상에서 사용하는 전자의료기기 가운데 최첨단 제품으로 불리는 것이 CT·MRI·PACS·PET·SPECT 정도며 이중 PET와 SPECT는 수요가 극히 한정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대부분을 국내업체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자의료기기란 개념이 생겨난 지 불과 20여년만의 일이다.
국내 전자의료기기산업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과연 무엇인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도입하면서 기술을 축적한 관련업계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이절묘한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컬러 초음파 영상진단기의 경우 메디슨이라는 소규모 업체가 5년간 1백억원을 투자해 독자개발했다. 이 회사는 연내에 디지털방식의 초음파 영상진단기를 시판키로 하는 등 선진국보다 높은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초 삼성GE의료기기가 미국의 GE사 기술을 도입, 국산화에 성공한 CT는 아직 국산화율이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차츰 국산화비율을 높여 3년내에 독자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MRI는 상품화에는 실패했으나 80년대에 세계 최고수준인 2.0테슬라급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메디슨이 1.0테슬라급 제품을 개발, 오는 9월부터 양산에들어간다. 세계적으로 MRI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는 10개국 미만이다.
멸균소독기의 경우 올해 초 한신메디칼이 투도어방식의 대용량(1천49) 멸균소독기를 개발했는데 이 방식은 세계에서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외의 모델도 세계 일류급 품질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자혈압계는 세인전자가 퍼지이론을 채택한 첨단제품을 올해 초 대거 선보인 데 이어 신생업체인 자원메디칼이 세계 최초로 단순 혈압·맥박측정은물론 비만도·심장 심부담·말초혈관 저항도 등을 동시에 측정해 프린트 아웃할 수 있는 전자혈압계를 개발, 양산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향후 24시간내내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손목형 홀터혈압계를 선보일 계획이다.
X레이 촬영장치는 중외메디칼·동아엑스선기계·대영의료기기 등이 연이어리모트방식을 채용한 제품을 개발한 데 이어 조만간 디지털방식의 X레이도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 PACS 등 의료정보시스템·인공심장·디지털내시경·각종 레이저수술기·자동생화학분석장치·유방암진단기·초음파 골밀도측정기·동서의학의료기기·실린지 펌프·의료용 가스공급장치·화상치료기 등 선진국 수준의각종 첨단 의료기기들이 올해에서 내년중 본격 생산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외형에 비해 내용상으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업계 스스로의 평이다.
특히 첨단 전자의료기기의 핵심기술 국산화율이 낮아 아직도 많은 업체들이 선진업체의 힘을 빌리고 있는 데다 구조적으로는 대부분의 전자의료기기업체들이 영세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대대적인 R&D 투자가 어려운 것은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의료기기시장 추세가 가전제품과 같이 디자인이 경쟁력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디자인인식도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효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