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껍데기뿐인 소프트웨어 정책

金炯周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소프트웨어 개발은 속된 말로 「람보 비즈니스」라고 한다. 즉 람보 같은몇몇 슈퍼 프로그래머(슈퍼해커)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는 속성상 많은 사람들이 투입된다고 무조건 좋은 제품이 되는것이 아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 등 하이테크산업이 몰려 있는 도시에 수많은 벤처회사와 소속 슈퍼해커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미래의 소프트웨어를개발하고 있다.

물론 슈퍼해커들이 받는 대우는 단연 최고이다. 이들의 학력은 고등학교중퇴에서부터 박사학위자까지 천태만상이며 학력은 급여 수준과는 무관하다.

이들은 한 벤처에서 개발한 제품이 실패해도 또 다른 곳에서 다시 개발에집중할 수 있는 하이테크 도시의 인프라 덕분에 직업의 안정성에도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는 다른 업종의 중소기업의 어려움(예컨대 금융대출 등)을 모두 가지고 있음은 물론 「슈퍼해커」를 보유할 수 없다. 슈퍼해커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슈퍼해커의 풀(Pool)이 형성될 수가 없고 그나마 있어도 중소업체까지 그 차례가 돌아가기는어려운 실정이다. 층이 두터운 슈퍼해커의 풀을 국가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로 소위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들 수 있다. 외국시장에서 히트한다고 판단되는 소프트웨어는 수입해 고작 한글화해서 짭짤한수입을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사의 기술로 만든 제품이 아니다 보니 높은 로열티로 지급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항상 어렵게 이윤을 맞추고 있다. 어렵게 장사를 해도이윤 마진이 좋지 않으니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지는것은 당연하다.

소위 정보통신업체의 시스템통합(SI) 사업이 그 속성상 아웃소싱(Out Sourcing)에 의존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나라 SI업체는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가 너무 없으며 자기 제품과 기술력을 가지려는 의지도 빈약하다. 한가지씩만 확실한 자기 제품이 있다면 국내 소프트웨어 판도는 크게 달라지고발전할 것이다. 국내 대기업 소프트웨어 업체의 장기적 안목에 변화가 있어야 할 시점이다.

산업 전반에 만연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고리도 척결돼야 할 과제이다. 소위 잘나가는 소프트웨어는 계속 상위버전이 출시되고 사후 서비스도좋다. 결국 시장선점에 성공한 기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더 빨리 앞서가고후발주자는 어렵게 추적해야 한다.

이런 원리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사용자들의 구매실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몇가지 실망스러운 현상이 있다. 예를 들면 데이터 베이스 구축과정에서 데이터 베이스 관리시스템(DBMS)에서제공하는 기능의 30∼40%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천만원대의 최고급외산 DBMS를 무조건 사용한다든지 심지어는 훨씬 싼값에 살 수도 있는 국산제품을 두고서 사용할 줄도 모르는 기능들로 잔뜩 포장된 외산 소프트웨어를구매하는 행위를 지난 수년간 많은 사기업 및 공공기관의 전산화 과정에서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간단하다. 즉 구매금이 공적인 돈일 경우 가장 편하게이름있는 제품을 구매하면 후에 책임이 없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나국내 소프트웨어가 입찰되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규격제한을 편파적으로 두기도 한다.

국산 자동차 보호 육성산업으로 우리 고속도로에 많은 우리의 자동차가 잘달리듯이 우리의 정보고속도로에서 사용될 국산 소프트웨어를 육성할 방법을시급히 연구해야 한다.